이야기의 과거
우리는 매순간 수많은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의 뉴스는 매일 지난 시간동안 일어난 사건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주고, 드라마와 영화는 매번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며 우리를 유혹한다. 이런 매체뿐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도 자신이 아는 수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게다가 무수히 많은 소문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이런 이야기와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야기를 사랑했다. 이야기 역시 우리를 사랑했다. 매순간 우리의 삶은 결국 이야기의 형태로 정리된다. 혹자는 그런 ‘이야기’를 구비전승되는 것에 한정해서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아프리카에서 사냥이 끝난 후에 부족원에게 전해주던 옛 이야기든, 시골에서 할머니의 무릎을 배고 누워 하롯불을 들으며 듣던 옛 이야기든 말이다. 이렇게 우리가 흔히 말로 전달하는 옛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민담, 전설이며 이야기가 맞긴 하다. 또, 이야기를 우리가 매번 누군가와 실제로 나누는 대화나 수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도 이야기의 한 종류는 맞다. 하지만 이 글 전체에서 사용할 이야기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 의미를 알아보자.
사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하던 것들의 수명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만지다시피 하는 스마트폰의 역사는 길게 잡아 20년이 채 안 됐고, PC 역시 길게 잡아야 30년이 안 됐다. 다시 말해서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리는 모든 것은 생각보다 그 역사가 짧다. 그리고 우리가 당연한 듯 주말이면 데이트 삼아 보는 영화 역시 1885년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기점으로 하면 120년을 갓 넘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예전부터 존재했다고 여기는 현대 문학의 역사조차도 100년 안밖의 시간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역사의 짧음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의 그 긴 생명력을 말하고 싶어서다.

우리가 짧은 시간에 이룩한 수많은 것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뤄진 것에 비하면 이야기의 역사는 매우 길다. 길게 말하자면 이야기는 인류의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존재한 이후에 이야기는 항상 존재해왔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로 알려진 “알타미라 동굴벽화”(2012년 스페인에서 발견된 엘 카스티요 동굴벽화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음)에 보면 그곳에도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에 사는 우리는 그곳에 남아있는 이야기 ‘듣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 벽화가 그려진 것이 그 당시에 존재했던 들소를 그린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꾼 꿈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그 벽화가 보여준 이야기가 포복절도할 정도로 재미난 이야기인지 아니면 사냥법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인지 그 느낌과 어조를 알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볼 수는 있다. 또 어떤 것을 그린 것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린 그 이야기에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그 시대에 살지 않고,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런 면에서도 상당히 장소와 시간에 지배를 받는 것 같아 보인다. 맥락에 대한 우리의 반응 문제일 뿐이다. 이것을 좀 더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면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의 사람에게 한 국가는 각기 다른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에게 있어서 일본과 중국, 미국이란 텍스트는 과거의 모든 영향이 결국은 현재에 영향을 주고 다른 방향으로 읽히게 된다. 그것이 유럽에서 재투성이 처녀 이야기로, 중국에선 모란꽃 처녀 이야기로,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콩쥐팥쥐로 바뀌듯 말이다.
구비전승되는 이야기는 각 지역에 맞게 전파된다. 이런 이야기의 뿌리를 찾는 과정은 어렵다. 어떤 이야기가 원작이고 원조인가를 밝히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왜냐면 이 당시의 이야기는 현재처럼 누군가의 창작물이 아닌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가 이야기를 수집하고 정리했는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많은 민족은 자신들 사이에서 돌고도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채집해뒀다.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본래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야기는 기록이 놓칠 수 있는 당대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야기의 기록은 그 자체로 한 시대를 기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왕조의 연대나 실록류가 그 시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로 남기려고 했고, 후세에 대한 평가를 고려해 작디 작은 체로 고른 것이라면 이야기는 그에 비해서 듬성듬성한 체로 거른 것이다. 그리고 그 수록 이유 역시 역사서와는 다르다. 역사는 전달하고자 하는 자가 그것이 무리없이 전달되도록 한 것이라면 그 자체가 당대성을 지닌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를 다루는 포괄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특히 이야기가 한 명의 저자로 인해 종합되고 내용이 확정되기 이전에는 더욱 그런 경향이 컸다.
그럼 이야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야기는 사건이 존재하고 서사구조를 가진 양식이다. 이 점에서 소설과 매우 유사하지만, 소설은 저자에 의해서 의미를 갖도록 구성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물론 이야기 역시도 누군가가 의해서 끊임없이 수정되고 변형되지만, 그래도 이런 변형 과정을 거쳐도 소설이 되지 않는다. 왜냐면 그 이야기에선 수정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춘향전의 이본이 있다고 하더라도 춘향이란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뀔 수 없는 것처럼 수정이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한다. 반면에 소설은 비록 유사한 형태의 이야기가 있더라도 작가의 순수한 창작물로 볼 수 있다. 바로 그 점이 소설과 이야기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작가 미상의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다수의 손을 거쳐 집단 창작되어 의미를 갖게 된 것이 기존의 이야기라면, 소설은 다르다. 기존의 이야기가 과거의 대부분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집단이 만들고 집단이 향유하던 것이라면, 소설은 개인이 그 이야기의 대부분을 장악한 형태를 지닌다.
<천일야화>에 대해서

<천일야화>를 처음으로 정리하고 유럽에 소개한 사람은 ‘앙투안 갈랑(Antone Galland, 1646-1715)’이다. 1646년 프랑스 롤로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의 동양학자이며 1704년 아랍의 설화 <천일야화>를 번역하여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로 유혹시킨 것은 ‘리처드 버턴(Richard Francis Burton, 1821-1890)’이다. <천일야화>가 유럽에 전파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본이 발생했지만, 리처드 버턴의 <천일야화>가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와 가장 다른 점은 보다 자극적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기존의 작업이 이야기 원본을 중시했다면, 리처드 버턴은 그것을 보다 대중화한 것이다. 물론 이 작업에 대해선 여러 가지 논할 점이 있긴 하다. 간략하게 말하면, 버턴의 이런 <천일야화>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20세기에 쓴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만들어진 동양’에 대한 환상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럽의 관점에서 재물과 보화, 미녀와 성적 환상이 넘치는 관능의 장소로 동양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실을 알리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이미지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런 리처드 버턴의 방법 덕분에 <천일야화>는 유럽의 욕망을 크게 자극시켰다. 기독교 엄숙주의와 청교도적 압박은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대상을 원했는데, 그 당시에 유포된 <천일야화>는 그런 욕망의 대상으로 동방을 제시한 것이다. 동방에 대한 이런 환상은 유럽의 근대화에 은밀한 기폭제가 됐다. 이미 고착되고 경화된 유럽을 벗어나 새로운 동방과 환상의 공간을 찾으려는 노력은 소위 ‘대항해시대’라 불리는 모험에 은밀한 원인이 됐다. 특히 강력한 술탄이 육로에서의 교역을 엄격히 제한하던 시기에 동방에 대한 환상은 그들의 항해술과 해사에 새로운 영향을 준 것이다. 또,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동방에 대한 환상은 무역과 교역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불러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교역에서 판매할 만한 매력적인 상품을 만드려는 시도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산업혁명에도 은밀히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천일야화>가 미쳤을 영향에 대한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가설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야기에 있어서는 이야기의 주체가 중요한 법인데, 우리는 그동안 유럽이 주체가 된 이야기에 길들여져 왔다. 다시 말하자면, 유럽이 이룩한 수많은 역사적 변혁이 유럽인에 의해서 스스로가 잘나고 역사의 주인이여서가 아니라 주변의 상황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럽이 변혁을 거치고 전 세계에서 주도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 유럽 자신만의 힘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는 것이 하나의 핵심인 것이다.
이야기의 과거와 미래라는 내용을 꾸미면서 <천일야화>를 선택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가 알고 있는 <천일야화>는 다소 왜곡되어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천일야화> 혹은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천일야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보다는 더 “신밧드의 모험”이나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둑”이란 이름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 전파의 선봉자은 바로 월트 디즈니사다. 디즈니 사는 사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문화의 원형을 확보하고 전파하는 데 관심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알라딘”이란 이름의 영화와 텔레비전 시리즈를 통해서 방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선 결국 복식과 배경은 다르지만 결국은 미국식의 왜곡이 존재한다. 인종과 배경, 복식의 변화는 있지만 그 속에선 결국 어떤 선과 정의가 존재한다. 악과 선의 대립을 통해서 결국은 선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천일야화>와 <아라비안 나이트>가 가진 본래 의미와 많이 멀어져 있다.
둘째, 아랍문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다. 세계화라는 문구 하에서 이제 우리는 예전에 비해서 외국에 방문하는 수도 급증해왔다. 하지만 예전에 발생했던 아랍국가에 있어서 포교금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포교를 하는 등,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은 여전히 높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천일야화>는 오래 전부터 존재한 아랍 문화와 심리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아직도 유교가 남긴 많은 흔적이 무의식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처럼 아랍국가에 있어서는 코란과 이슬람교에 대한 전통이 강하게 흐르고 있다.

셋째,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다. 굳이 <천일야화>를 이야기의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데 써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존재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천일야화>만이 이야기를 수집한 독자적인 형태는 아니다. 예로부터 이야기는 향유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에도 이야기를 모은 것은 존재했다. 보통 문인이 자발적으로 모은 글을 비롯해 국가나 관청에서 수집한 이야기, 역사의 뒤에 따라붙는 야사 등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대부분이 단순한 수집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천일야화는 단순히 수집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와 이야기가 서로 연관되어 있거나 결부되는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864호에 계속>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