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서사 구조와 유형 분석
<천일야화>는 이야기를 단순히 수집 채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천일야화>의 이야기는 몇 가지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 틀 안에 여러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점이다. 이는 현대소설에서 흔히 액자 구조와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고소설 중 몽자류 소설과 비슷하다. 몽자류 소설은 이야기 속에서 꿈이라고 하는 형태로 다른 이야기가 개입된다. 대표적인 것이 <구운몽>이다. <구운몽>에서 주인공 성진은 수행 중인 스님이었으나, 여자와 세상에 대한 욕망을 느껴 번민한다. 그리고 그 번민 속에서 세상에 나가 세상의 모든 욕망을 양소유가 되어 체험한다. 이처럼 몽자류 소설은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이야기 사이의 연결을 꿈이라는 방식을 통해 해소한다. 하지만 아랍 세계에는 액자 구조는 이미 9세기부터 존재해왔고 친숙한 방식이었다. 또한 익숙한 방식이니만큼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이야기를 연결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야기 자체를 즐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는 액자틀 역할을 하는 21개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물론 이 중에서 몇 가지는 갈랑의 창작이 의심되기도 한다. “바다 사나이 신드바드의 이야기”, “알라딘과 신기한 램프 이야기”, “알리바바와 여종에게 몰살된 마흔 명의 도적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 이유는 갈랑이 낸 <천일야화> 이전에는 출처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천일야화 이야기 분석
이 21개의 큰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큰 액자 역할을 하는 것은 첫 장인 “아랍의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술탄 샤리아와 대재상의 딸인 셰에라자드가 나온다. 물론 이 샤리아와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추가된 이야기다. 바로 이 덕분에 <천일야화>는 실패한 연애담에서 성공한 연애담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천일야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앞의 이야기가 이후 이야기를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큰 단위에서 서사성과 구조를 지녔다는 점인데, 이것은 인생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완결성과 완전성을 추구는 종교의 의미도 일부 포함했다고 볼 수 있다.
<천일야화>의 수록된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분류해 모은 것이 아니라, 초기에 제시된 상황을 전복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다. 즉, 왕비의 불륜으로 인해서 여성혐오에 빠진 샤리아가 다시 여성에게 사랑을 느끼게 만들고, 그 과정에 분노에 의해 본의 아니게 폭정을 하게 된 샤리아가 다시 제대로 된 정치를 하게 한다. 요약하면 실패한 연애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성공한 연애담으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존재인 술탄인 샤리아가 아니라, 바로 여성이자 화자인 셰에라자드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천일야화>에 제시되는 이야기들은 단순히 나온 것이 아니라 왕에게 치유를 목적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여성혐오에 빠진 왕을 치유하기 위해서 <천일야화> 초반에는 실패한 연애담과 신뢰의 이야기가 나온다.
<천일야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이야기의 성격에 의해서 구분할 수 있다. 연애담(연애에 실패하거나 성공하는 이야기), 모험담, 재담(재미나 재치 있는 이야기), 기담(기이하고 괴상한 이야기), 사회 문제를 다룬 이야기 등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서로 섞이기도 한다. 이 중에서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은 바로 연애담이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이야기가 하나의 결말을 가진 것에 비해 연애담은 실패와 성공의 두 가지 결말이 있다. 특히 초반에는 대부분의 실패한 연애담이 나오고 있다. 이것 역시 왕비의 불륜으로 인해서 사랑의 상처를 입었으나 그것을 무시하려고 하는 샤리아에게 처방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요한 점 중에 하나는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반복될 경우에는 흥미가 반감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초기의 연애담이 샤리아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후에는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다 사나이 신드바드의 이야기”는 모험담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은 완전한 모험담이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힌드바드라는 존재가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이다. 신드바드는 거대한 부를 얻은 사람이고, 힌드바드는 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든 사람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연히 힌드바드는 그런 부가 사회의 부조리라고 인식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당대의 분위기였을 것이다. 현재 우리도 빈부격차의 문제는 큰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당대에 취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천일야화의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일종의 대답을 시도한다. 빈부격차에 대해서 토론이나 논점을 제시하기보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정당성에 대해 설파한다. 부자가 획득한 부는 목숨을 건 모험에 의해서 얻은 것이며, 그래서 정당하다. 사회에 팽배한 불만에 대해선 여기선 모험담의 형식을 빌려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사법 처벌의 정당성 역시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살해된 여인의 시체를 둘러싼 기담인 “세 개의 사과” 이야기가 나오고, 하나의 시체에 다수의 용의자가 존재하는 이야기인 “조그만 꼽추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 이야기는 당대의 사법 문제와 부당성에 대해서 해갈제 역할을 한다. 어디서나 사법 처벌에 대한 문제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법의 정당성과 정의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믿게 되는 것이다.
또한 천일야화는 등장하는 계층과 인물에 의해서 두 가지 세계가 동시에 결합되어 있다. 크게 존귀한 존재인 칼리프와 왕족과 동시에 보통 존재인 상인과 평민, 그리고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노예나 죄인, 도적 등이다. 이들은 서로 이야기 속에서 섞여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실제 존재하는 계층과 달리 정령이나 요정, 마술을 부리는 사람, 괴물 등의 존재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존재는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서 섞이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존재는 모험담이나 연애담에 존재한다. 그 이유는 이들을 통해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곳에선 이런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천일야화의 두 가지 큰 축을 차지한다. 그러나 기담의 형식은 이 두 가지 축의 경계가 희미하다.
반면에 <천일야화>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연결을 대화라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이 이야기는 샤리아 술탄과 셰에라자드에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죽지 않기 위해서,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이야기를 한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가 끊기는 순간, 그리고 왕의 흥미를 잃게 만드는 순간,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셰에라자드로 대표되는 수많은 이야기꾼의 숙명인 것이며, 이야기의 생명력과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의 본질을 드러낸 <천일야화>는 말 그대로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깊은 고리를 따라 계속 침전한다.
<천일야화> 속에서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해왔다. 이야기는 때론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기도 하고, 생명과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다. 또한 이야기는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화술의 하나로도 존재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간 속에서 인간의 행동을 표현하면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도 했다.
이야기의 미래
지금까지 <천일야화>를 통한 이야기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사실 이야기란 단어는 우리에게 혼돈을 줄 수 있는 조금 부정확한 말다. 이야기는 요즘도 여러 분야에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은 예전과 달리 회사가 요구하는 객관적인 이력만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적어야 한다. 우리가 접하는 광고에서도 제품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상품을 더 매력적으로 꾸민다. 특히 소셜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이제 우리는 실체가 아닌, 그 실체를 감출 수 있는 이야기가 더 필요해진다. 자본주의가 점점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우리의 욕구와 방향은 변해간다.
현재 이야기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바로 인터넷이라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매체 덕분이다. 사실 인터넷 자체는 등장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이 매체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은 이런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세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기존의 전달 매체와 확연히 다르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전달 매체인 말은 사람을 통해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따라서 그 이야기는 창작자와 전달자의 죽음과 함께 소멸한다. 그 소멸을 막기 위해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 이야기의 생명과 성격을 결정지었다. 이야기가 소멸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치와 재미, 보존 가치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요소가 있다고 해도 이야기의 생명은 영원하진 않았다. 그건 바로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전달자가 전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명이 서면 그 문명은 다른 문명을 핍박하거나 몰살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글은 중요한 다음 매체가 되었다. 이는 하나의 송신자의 메시지가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수신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과거에는 신화적 인물이나 영웅만이 이야기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면, 글과 책이 보편화된 근대와 현대에선 작가라는 존재가 이야기는 새로운 주축으로 나타났다. 앞선 말의 시대에는 창작자가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야기의 창작자가 이야기의 중심에 들어선 것이다. 가치있는 이야기는 작가를 거쳐 책이라는 형식을 거쳐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이야기는 바로 이 과정 속에서 연구와 평론 그리고 대중의 판단을 거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그런 이야기 매체의 발전에 있어서 인터넷은 새로운 매체가 됐다. 인터넷은 글이라는 매체가 지닌 특성과 말의 특성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 그 덕분에 인터넷은 수많은 이야기를 생산하고 변화시키는 공간이 되었다. 인터넷이 가진 신속성은 인간이 사유하고 반성할 시간마저 없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전달해버린다. 게다가 기존의 그 어떤 매체보다도 공간의 제약도 극적으로 줄여버렸다. 이 새 매체는 인류에 있어서도 독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보통 대부분의 지식은 연구와 검증을 통해서 인류의 보편 지식에 합류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그것은 긴 시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된다. 하지만 인터넷은 검증되지 않은 날정보(Raw Data)가 그대로 돌아다닌다. 문제는 바로 이 날정보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야기'로 변하며 강한 전파력을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수많은 사람의 지식 체계를 교란시키며, 결국은 지식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야기는 최근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그것은 바로 SNS이다. 이 서비스는 한 개인의 모든 이야깃거리를 그대로 타인에게 제공한다. 이렇게 유포되는 정보는 너무나 한정적인 보호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자기점검, 자기비판이다. 현 사회는 바로 이런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에 직면해 있다. 한 쪽에서는 의지와 상관없이 노출되는 자신의 정보를 두려워하고, 한 쪽에서는 스스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바로 이 양면성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렇게 넘쳐나는 이야기는 과거의 천일야화와는 달리 하루에도 몇 천, 그 이상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가 자체가 아닌 그 이야기를 수용하는 당사자의 태도다. 새 시대의 수용자는 이야기에 이끌려 다니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를 재생산하지 않고, 정말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의 분위기는 암묵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지배한다. 우리는 실제 우리의 삶의 모습을 '이야기'에서 찾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이야기 속에서 중독에 빠져버린다면 우리는 어느새 삶이 이야기에 매몰되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한다. 단지 이야기에만 빠져버린다면 우리는 천일 밤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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