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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 뜨거운 크림반도
제 874 호    발행일 : 2014.03.17 

  미국의 전 카터 행정부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던 브레진스키는 1997년 출간한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 American Primacy and Its Geostrategic Imperatives)>에서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구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며, 특히 우크라이나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당시의 러시아는 힘을 상실했지만 언젠가는 힘을 키워 미국에 대항하는 강한 제국주의적 본성을 드러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미국 정책 담당자들에게 우크라이나를  ‘지정학적 주측’으로 삼아 러시아의 세력 팽창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브레진스키의 혜안은 최근 크림반도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잘 설명해 준다. 과연 크림반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소련 해체 이후 민족주의가 고양되고 탈러시아 경향이 강화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지정학적 불협화음을 지속해왔다. 우크라이나는 서구 지향적 대외정책을 추진하며 지속적으로 그들만의 국가를 만들어 가길 원했다. 이런 우크라이나의 행보는 러시아와의 마찰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독립국가연합(CIS)의 경제 및 안보통합과 슬라브연방 창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거부로 형성된 정치적 한랭전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부채상환 독촉과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도용을 둘러싼 경제 대립, 우크라이나의 독자적 핵 통제권 행사를 놓고 벌인 안보 설전, 심지어 정교회의 주도권 장악을 둘러싼 종교분쟁 등이 발생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를 악화시킨 결정적 사건은 러시아가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우크라이나를 위협했던 가스분쟁과 흑해함대 주둔시한 만료를 앞두고 러시아가 막강한 군사력으로 그루지야 등 주변을 위협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들 사건으로 안보 불안을 느낀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희망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들은 작은 분쟁으로 끝났지만 이번 크림사건은 다르다.
  크림 사건의 시작은 우크라이나에서 친 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대통령의 실각과 친 서방 성향의 기존 야권 세력의 중앙 권력 장악이다. 친 서방 성향의 중앙 권력은  EU와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에 반발한 크림 자치공화국을 비롯한 동남부 지역은 분리주의 움직임을 내비쳤고, 러시아는 이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개입까지 불사하겠다는 강경 태도를 보였다.
  2014년 3월 4일 러시아 군대가 크림반도에 주둔한 우크라이나 군대를 포위하면서 크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 되었다. 3월 11일 러시아는 크림 공화국의 독립 혹은 러시아로의 병합을 주장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크림 공화국을 비난하고 있다. 여기에 EU와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선언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나서나면 크림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신냉전의 도래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강대국들에겐 주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에게도 이번 사태의 전개와 여파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이 ‘뜨거운 감자’를 자세히 이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왜 크림반도에 집착하는가?

  크림반도에 러시아가 집착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크림반도는 전략적 요충지다. 러시아의 주변 해협은 수심이 낮거나 겨울에 대부분이 얼어버리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는 부동항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크림반도는 부동항이 있으며, 지리적으로 터키 북부를 마주하고 있고, 지중해와 이어져 중동이나 발칸반도 지역으로 진출하기 용이하다. 더불어 현재 크림반도의 남부 항구도시인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의 3대 함대인 흑해함대가 주둔해 주기적으로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그만큼 크림반도는 전략적으로 러시아에게 매우 중요한 요충지다.
  둘째, 푸틴의 유라시아주의와 영토적 요구이다. 2000년 푸틴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였다. 쇠락한 러시아의 권력부활과 침체된 경제 활성화를 꿈꾼 것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초가 바로 두긴(Alexander Dugin)의 유라시아주의다. 두긴의 유라시아주의는 서방과 대립하려는 냉전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서구 문화의 헤게모니적 영향과 그 지배에 맞서기 위해 지역 제국의 창설을 주장하면서 ‘유라시아 동맹’을 주장한다. 이 유라시아주의 속에는 문화인류학자인 로버트 아드레이(Robert Ardrey, 1966)가 말한 ‘영토적 요구(The Territorial Imperative)’가 기본으로 내재되어 있다. 영토적 요구란  동물이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 영토를 정복하고 지키려는 본능, 즉 영토적 본능을 인간에게 적용하여 나온 용어이다.
  푸틴이 크림반도를 러시아의 영토로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01년 우크라이나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크림반도의 24%가 우크라이나계, 12%가 타타르족인데 비해 러시아계는 58%의 구성비를 보였다. 크림반도 인구의 반 이상이 러시아계라는 뜻이다. 푸틴의 ‘강한 러시아’를 위한 영토적 요구는 2012년 푸틴이 재선되면서 더욱더 선명해졌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에서 분출되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원한다

  러시아에 대한 독립은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정치적 독립에 대한 논의는 라슬러(Karen A. Rasler)와 톰슨(William R. Thompson)의 이론을 참고해 볼 수 있다. 그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새롭게 독립한 국가는 국제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주권과 독립을 획득한 이후에도 정치적 불안의 시기를 겪는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오랜 국내불안의 치유를 모색하고 주변의 적대세력들과 경합을 벌이는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무기를 드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대외분쟁은  강대국의 개입이나 상대편 국가의 내정에 대한 다른 국가의 간섭을 촉발해 종종 더 큰 규모의 전쟁으로 확대되곤 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러시아로부터 힘겹게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독립 후에도 지속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하에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향력하에서 국내적 문제들과 싸우는 정치적 불안의 시기를 겪었고, 어느 정도 힘을 비축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젠 그 국내불안의 치유할 활로가 필요한 것이다.
  경제적 독립의 문제는 루블화 문제에서 시작됐다. 1992년 1월 러시아는 CIS의 다른 국가들과 상의 없이 단독으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의  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CIS 국가들은 루블화권 형성을 위한 조폐국 창설과 각국에 루블화가 충분히 유통된 후 가격 자유화를 동시에 실시할 것을 러시아에 요구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문제의 부담을 회피하고 단독으로 가격 자유화를 강행한 것이다. 또한 러시아 중앙은행이 루블화 발행을 독점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CIS 국가들에서는 루블화 부족이라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인플레이션 파급 효과는 우크라이나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루블화권 이탈은 불가피 했다.
  우크라이나는 1992년 3월 신경제계획을 발표하면서 루블화권 이탈과 함께 러시아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을 선언하였다. 2004년 유셴코 대통령은 서구 유럽식 제도 개혁을 위해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2010년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취임 이후 러시아와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를 회복하고 교역, 농업.식량, 원자력 및 에너지, 교통.철도 및 인프라, 우주.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간의 협력을 강화하였다.
  우크라이나의 대외교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수출 18.0%, 수입 40.7%로 매우 높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의존도는 6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데 원자력 연료는 100%를, 천연가스 70%, 원유 70%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예속을 벗어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경제적 독립을 주장했고, 그 결과 크림반도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는 왜 강압외교를 선택 했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에는 다양한 분쟁이 있었다. 하지만 금번 크림사태처럼 군사력을 동원하여 강력히 대응한 것은 처음이다. 그렇다면 왜 푸틴은 군사력을 사용하는 강압외교를 선택했을까?
  찰스 케글리(Charles W. Kegly. Jr)에의하면 강압외교의 조건 중 ‘분쟁고조에 대한 적의 두려움과 굴복의 긴박함에 대한 믿음’ 이라는 것이 있다. 강압을 펴는 국가는 반드시 적의 마음속에 ‘요구를 수용해야만 한다’는 긴박감을 심어놓아야 한다. 이러한 적의 인식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이 중요하다. ① 강압을 펴는 국가가 과거에 군사력을 성공적으로 사용했었다는 평판 ② 목표 국가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준으로 압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푸틴은 2008년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를 침공한 전력이 있다. 당시 러시아는 친 러시아 성향인 조지아의  남오세티야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조지아 본토에 전격적으로 공습을 단행했다. 러시아는 당시 5일 만에 승리를 거뒀다. 즉 러시아는 과거 조지아에서 강압외교 전략으로 군사력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 줌으로써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더불어 미국과 EU의 중재안을 거부하면서 지속적인 압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는 푸틴 집권이후 풍부한 지하자원 수출을 통해 풍성해진 국고를 바탕으로 과거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반면, 냉전 이후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된 미국은 산재한 여러 문제들로 인해 섣부른 직접 개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EU 또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때문에 러시아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 강압외교로써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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