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소비를 한다. 이 때문에 사람마다 소비하는 목적, 대상, 가격 등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수많은 소비를 살펴보면 하나의 트렌드가 존재하며 이는 매번 변화한다. 그렇다면 최근 유행하는 소비 트렌드는 어떤 형태일까?
# 작고 소소해서, 그래서 더 소중한
대학생 김유경(인천광역시 남구·22) 씨는 여름방학 동안 취업 준비,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등으로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는 이런 바쁜 일상 중에도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아가는 것이 취미이다. 그는 “일상생활에 지쳐 힐링하고 싶을 때면 분위기 있는 카페, 독특한 카페들을 자주 찾아간다”며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감성 있는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A씨는 지난 여름휴가를 호캉스(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로 보냈다. 그는 “해외여행을 갈 돈은 충분히 있었지만, 휴가 기간도 짧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도 만만치 않아 국내 호텔에서 휴가를 보냈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호텔만 예약했는데 나에게 편안한 휴식을 선물한 휴가가 됐다”고 말했다.
올해 가장 주목받는 소비 트렌트 중 하나는 ‘소확행(小確幸)’이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은 1986년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 <랑게르한스섬의 오후>에서 비롯됐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수필에서 소확행은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듯 소확행은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의미한다.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LG경제연구원 황혜정 연구위원은 “소확행이 주목받는 지금은 장기적으로 저성장 경제 기조가 지속돼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고, 취업도 어려운 불안정한 경제.사회적 분위기 속에 있다”며 “이러한 상황 때문에 거창한 것보다는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소확행이 주목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확행은 소비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혼술, 혼밥, 색다른 취미생활 등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소비가 많아졌다. 특히 집(Home)과 유희(Ludens)를 합성한 ‘홈루덴스’라는 말이 생길정도로 집에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집에서 술을 먹는 ‘홈술족’들을 사로잡기 위해 주류회사들은 소포장, 소용량 제품을 출시했다. 기존 350ml 맥주에서 크기를 줄인 250ml 소용량 맥주와 팩와인 등이 출시됐다.
또한 해외여행도 먼 나라에서 가까운 나라로, 그리고 국내여행으로 트렌드가 옮겨졌다. 특히, 요즘에는 국내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호캉스’가 인기다. 호캉스를 다녀온 A씨는 “날도 덥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 다들 호캉스를 많이 가는 것 같다”며 “굳이 바깥으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호텔 안과 주변에 수영장, 영화관, 쇼핑센터 등 놀 거리들이 많아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도 충분히 즐겁다”고 말했다.
# 돈을 써도 아깝지 않아
이유민(대전광역시 중구·28) 씨는 가수 방탄소년단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이번 방탄소년단의 신곡 발매에 맞춰 앨범을 20장 구매했지만, 앞으로 있을 팬사인회를 위해 앨범을 추가로 더 구매할 생각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방탄소년단 콘서트는 모두 참여하고, 굿즈(연예인이나 스포츠 팬을 대상으로 디자인한 상품)도 모두 구매한다. 그는 “평소에는 절약하며 사는 편이지만 덕질과 관련된 소비를 할 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은 돈이 아깝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전혀 아깝지 않다”며 “오히려 일상생활에 지칠 때마다 덕질과 관련된 소비를 하고 굿즈를 구매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전했다.
얼마 전까지 ‘가성비’는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대표하는 키워드였다. 가성비란 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로, 제품을 구매할 때 보다 실속 있는 상품을 선택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가격 대비 마음이라는 ‘가심비’가 소비심리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됐다.
가심비는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소비의 주된 결정요인이 제품의 ‘성능’과 같은 객관적인 요인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에 있다는 개념이다. 이는 다른 말로 ‘플라시보 소비’라고도 부른다. 약효가 없는 가짜 약을 먹어도 약을 먹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몸이 나아지는 효과를 느끼는 것처럼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실질적인 성능보다 개인이 느끼는 만족감을 따져 소비하는 것이다.
지난 5월, 홈쇼핑 앱 ‘홈쇼핑모아’에서 3040 여성 1만 7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심비를 따져 소비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90.6%가 있다고 대답했다. 가심비 소비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부분은 ‘소비자의 심리적 불안감을 잠재워줄 때’이다. 살충제 계란 파동, 생리대 위해성 논란 등 제품 안전 문제가 잇따라 터지자 소비자들은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안전한 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인터넷 마켓 옥션에서 면 생리대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66% 증가했고, 100% 유기농 순면으로 만든 유기농 생리대 판매량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가심비 소비에는 ‘매력’이 큰 역할을 좌우한다. 기능이 좋지 않아도, 가격이 비싸더라도, 예쁘기만 한 쓰레기더라도 소비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확실한 매력 하나면 모든 단점이 극복된다. 굿즈 시장은 매력으로 소비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시장으로, 국내 굿즈시장 규모는 1,000억 원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유민 씨는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굿즈가 나오면 가격과 상관없이 구매하게 된다”며 “굿즈를 구매하면 기능과 관계없이 만족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심비 소비는 여러 신조어를 낳았다. ‘탕진’과 즐거움을 뜻하는 ‘잼’의 합성어로 ‘탕진잼’, 우울하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는 비용이란 의미의 ‘쓸쓸비용’, 평소 아낀 돈을 일순간 어느 분야에 아낌없이 쓴다는 뜻의 ‘일점호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비용이란 뜻의 ‘시발비용’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각각 뜻은 조금씩 달라도 자신의 만족을 위해 쓰는 비용이라는 점에선 일맥상통하다. 이러한 소비행태에 대해 황혜정 연구위원은 “젊은 층에서 시작된 ‘내일을 위해 인내하기보다, 오늘 당장 즐겁게 살자’는 생각이 가심비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 내 신념의 가치를 팝니다
이지연(청주시 서원구·21) 씨는 핸드폰 케이스, 에코백, 팔찌 등 다양한 상품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후원하는 마리몬드에서 구매한다. 그는 “처음에는 마리몬드의 상품이 예뻐서 눈길이 갔지만, 마리몬드가 담고 있는 의미가 좋아서 계속 사용하게 됐다”며 “그저 핸드폰 케이스를 사는 일이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을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 마리몬드의 제품을 자주 구매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필요한 상품도 구매하고 좋은 일에도 동참할 수 있어 좋다”며 “앞으로도 이런 상품을 위주로 소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불의에 저항한다. 소비자들이 소비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불매운동’이다. 지난 6월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1934(19세~34세)세대 900명을 대상으로 1934세대의 ‘라이프 스타일 및 가치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응답자 중 92.3%가 최근 6개월 간 ‘자신의 의견이나 소신을 표현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이었다. 또, 1934세대의 36.2%가 현재 논란을 일으킨 기업의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를 ‘미닝아웃’이라 부른다. 의미,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 속에서 나오다’라는 뜻의 ‘커밍아웃(coming out)’이 결합한 단어인 미닝아웃은 자신만의 의미나 취향, 정치적.사회적 신념, 소신 등을 소비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현상이다. 미닝아웃은 전통적인 소비자 운동인 불매운동과 구매운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더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된다.
미닝아웃은 대표적으로 SNS 해시태그를 통해 나타난다. 단순히 자신이 소비하고 구매한 내용을 SNS에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하게 해시태그로 나타내기도 한다. SNS 해시태그는 간편하고, 즉각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공유할 수 있으며, 사회적 관심사를 끌어내기도 쉽다. 앞서 언급한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2.5%가 ‘SNS 해시태그 운동에 공감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고 답했다.
미닝아웃은 특정 메시지가 새겨진 제품을 소비하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옷, 가방, 핸드폰 케이스, 배지 등에 슬로건을 넣어 내가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해외 모 유명 브랜드에서 선보인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We are all human being(우리는 모두 인간이다)’와 같은 양성평등, 인권,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관한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가 대표적인 미닝아웃 상품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미닝아웃은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 환경 보호에 대한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생수 업체인 풀무원샘물은 플라스틱량을 줄인 친환경 용기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였으며,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병 전량을 회수해 재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황혜정 연구위원은 “인터넷과 SNS 발달로 인해 기업이 하는 활동의 투명성, 확산성이 높아졌다”며 “미닝아웃을 통한 소비자의 소비는 현재 기업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소확행, 가심비, 미닝아웃. 뜻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자신이 만족하는 소비’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원하고,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자신이 만족하는 소비. 이것이 바로 지금의 소비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도 소비를 고민하는 당신,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생각하는 소비로 오늘 하루 행복해지는 것이 어떨까?
김노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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