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희 수

자연대 화학과 교수
 
 오늘 아침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다가 눈길을 끄는 기사를 발견했다. 영어 유치원에 다니게 된 아이가 심한 스트레스로 유치원을 안 가려하고 심지어는 원형탈모증세까지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영어를 점점 더 중요시하는 사회분위기에 따라 직업이나 직책, 전공, 나이, 그야말로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영어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졸업과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야하는 대학생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다보니 외국인은 물론이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 앞에서도 위축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나는 여기서 영어에 서툴더라도 너무 겁먹거나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몇 년 전에 독일에 두 달간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 연구실에 영국인이 박사후 연수과정으로 와 있었는데 그 영국인은 독일교수와 독일말로 편하게 의사소통을 하였다. 독일어를 얼마나 공부했느냐고 물었더니 1년이라고 했다. 나는 독일어를 고교 때 3년, 대학서 1년, 또 그 이후에도 조금씩 했으니 영국인이 1년 배우고 하는 독일어를 4년 이상 배우고도 못하는 것이었다. 10년 이상 영어 공부를 해도 외국인 앞에서 영어 한마디도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공부 방법을 탓하고 가르친 선생님을 탓하고 열심이 부족한 학생 탓으로 돌리지만 다들 지금까지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영어가 그토록 어렵게 느껴지고 오랫동안 공을 들여도 잘 안 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한국인이라서 그렇다. 우리에게 영어가 힘든 것은 제도나 열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원래 그 뿌리가 다르다는데 원인이 있다. 따라서 영어가 서툰 것은 우리가 한국인임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영어권 사람들이 우리말을 배운다면 역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우리가 일본말을 배운다면 영어만큼 고생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영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미국인의 영어를 기준으로 하니 항상 기죽은 상태로 공부를 해야 했지만 혹시 한국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조금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TV에서 반기문씨의 영어를 들은 적이 있는데 발음이나 속도가 유창한 영어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분이야말로 유엔사무총장직을 수행하기 위해 세계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분이니 가장 훌륭한 영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영어는 잘 굴러가는 발음이나 흐르는 듯한 빠른 단어 연결이 아니라 느린 듯해도 문법에 맞추어보려는 노력과 발음기호에 충실한 발음이 아닐까한다. 어려울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영어를 접하는 기회를 늘리는 것은 좋으나 제대로 못하는 것을 대충 혀나 꼬부리고 실용이니 뭐니 하면서 생각 없이 무조건 말하자는 영어교육이 있다면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국인처럼 생각하고 발음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식대로 하고 당당한 자세만 가져도 이미 영어가 한 단계 올라간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