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파업으로 인한 대체 급식 제공”, 올해도 전국 곳곳의 학교가 ‘급식 없는 날’ 가정통신문을 학부모에게 전달했다. 빵과 우유, 바나나 같은 간편식이 학생들의 한 끼 식사가 됐고, 평소 한 줌 한 줌 반찬을 담아주던 급식 아주머니의 손길도, 조리와 설거지로 분주했을 급식실의 풍경도 자취를 감췄다.
떠들썩해야 할 조리실 대신 소란을 대신한 것은 매스컴이었다. “급식 대란”, “충북교육청 비상 체제 돌입”, “혼란 최소화”라는 기사가 이어지며 사용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지난 11월 20일과 21일 진행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총파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조리실을 나와 찬 바람 속을 행진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식탁에서 사라진 밥 한 끼에 맞춰져 있었다.
급식이 끼니였던 시절을 생각해 보니, 필자 역시 물음을 품지 않았었다. 급식의 존재 여부에 관심이 있었을 뿐, ‘왜 급식 아주머니들이 서울로 올라간 것인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학교 측에서도 가정통신문 한 장으로 대신하고 조용히 넘어갈 뿐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사회에서 공부하고 성장을 갈망했다.
노사문제에 관한 관심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필연적 과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산재가 발생하고 중대 재해가 되며, 노동자의 죽음이 통계로만 남는 사회가 된다. 지금 학교 급식실은 어떤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떤가. 고온의 조리 흄에 장기간 노출돼 폐암 위험이 상존하는 환경, 이미 178명이 폐암 산재를 인정받은 구조, 그리고 지난 9월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고(故) 이영미 씨가 처음으로 순직을 인정받은 사회에서 권리 개선을 위해 파업을 선택한 이들을 여전히 ‘급식을 만드는 기계’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평소 당연하듯 존재하던 급식이 멈추자, 분노의 화살은 거리로 나온 조리실무사들을 향했다. “학교 다니는 자식이 있다면 그러지 말아야 한다”부터 “비정규직 계약임에도 욕심이 끝이 없다”라는 등 갖가지 댓글과 비난이 이어졌다.
이를 의식하면서도 노동조합원들은 매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학생들에게 빵만을 남기고 떠난 이유는, 열악한 환경과 임금 체계라는 사면초가에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기 때문이다.
11월 총파업 이후 또다시 임금교섭이 결렬 돼 오는 12월 4일 경기, 대전, 충남의 총파업과 5일 경남, 경북, 대구, 부산, 울산의 총파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하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급식을 멈추고 서울로 오게 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그래야만 훗날 나의 아이가 급식이 빵으로 나온 이유를 묻는다면 그 정답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아이의 급식으로 더는 빵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김동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