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라고 대자보를 붙이고 대학을 포기한 학생이 있었다. 기사를 보면서 "대학 거부? …" 하는데, 데자뷰 느낌이 왔다. 대학 교수로서 거부 받는 느낌, 전에도 있었다.
지난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은 군부독재에 대한 거부로 대학에서의 수강을 거부 하곤 했다. 그때 교수들은 빈 강의실에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와야 했던 서글픈 기억이 있다. 그때는 학과 학생들에게 전공공부를 하라고 권유하다 보면, 마치 사회에 등 돌리고 살라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는 했었다. 학생들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을 보면 마치 내가 "어용교수(御用敎授)"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교수 입장에서는 사회운동과는 관련 없는 학문을 가르치기가 아주 힘들었다. 그때 학생들은 전공강의를, 대학을 거부하다가, 대학을 떠나기도 했다. 떠나서 농촌으로 가고, 공장으로도 갔다. 또 일부는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때의 학생들은 대학 밖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강의 거부로 표현하였다. 그래도 자신이 속해있던 대학사회에 대한 태도는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꼭 강의실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의식화 학습의 기회는 대학과 관련된 장소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학교 포기는 이후 다시 대학으로 돌아올 기회를 얻으면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학생들의 대학 거부는 그때와 다르다. 지금 학생들이 거부하는 이유는 그때에 비해 상당히 개인적이다. 이들은 개별화된 개인으로 자신의 출세를 위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고, 이를 견디지 못한 한 학생이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같은 점은, 교수 입장에서 지금도 전공 공부를 권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금 학생들은 취업을 위한 영어공부, 각종 스펙을 위한 공부에 전념한다. 전공공부는 오로지 그 스펙 중의 하나인 학점관리에 불과할 뿐이다. 대학 포기 대자보를 붙인 학생은 말한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하지만 대학의 또 다른 구성원인 교수들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자격증에만 전념하는 현실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전공공부를 하라고 하면 현실을 모르는 답답이로 취급 받는다. 이러한 대학에서 성과를 강요받던 한 교수는, "물리학을 사랑하지만, 업적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대학을, 자신의 삶을 떠났다. 2, 30년 전에도, 지금도 대학은, 또 교수는 학생들과 전공공부를 같이 하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아니다.
사실 이 문제는 사회 전반의 경쟁 풍토의 문제이지, 대학의 문제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대학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어야 하는 일이다. 대학이 사회의 풍토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가 대학에 반영되게 내버려 둘 일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풍토를 바꿀 수 있는 방안을 대학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회에 대한 인식,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다면, 대학 구성원들의 대책 없는 대학 포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 아닐까? 정말, 심히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