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살던 동물이 자신의 서식처나 둥지, 또는 태어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성질을 ‘귀소본능’이라고 한다. 자연을 동경하는 인간도 이처럼 귀소본능이 있는 것일까? 시작(詩作)에만 전념하고자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관을 세운 이가 있으니 한국시인협회장 오탁번(67) 시인이다. 추운 겨울이 끝자락에 다다른 요즘, 마음만은 따뜻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고향으로 돌아와 ‘원서문학관’을 짓다

 산골짜기를 지나 힘겹게 문학관에 도착한 기자를 오탁번 시인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 시인이 사는 곳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에 위치한 ‘원서문학관’으로 폐교가 된 그의 어릴 적 모교를 직접 개조해서 만든 곳이다. 그는 “저는 어릴 적 백운초등학교 애련분교를 다녔어요. 이곳은 지금의 제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곳으로 자연을 노래하는 시를 지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습니다”라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실제로 문학관 앞을 가로지르는 시냇가와 병풍처럼 문학관을 둘러싼 산들은 자연과 낭만을 느끼기에 최고의 장소처럼 보였다.

 원서문학관이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연유를 묻자 그는 “‘원서’란 멀 원(遠)자에 서쪽 서(西)자를 합쳐 만든 이름으로 백운면의 조선시대 이름입니다. 제천에서 서쪽으로 가장 멀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옛 이름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문학관 이름을 ‘원서’라고 지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시’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다

 오 시인은 중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그의 어린 시절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는 “어릴 적에는 가난 때문에 스스로 돈을 벌어 공부해야 했어요. 힘든 시간들을 보냈지만 그 속에서 시를 통해 지친 마음을 위로했고, 또 시를 쓰면서 세상을 재창조하는 매력에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라며 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시작(詩作)에 전념해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라는 작품이 당선됐어요. 그 후부터 더욱 열정적으로 시작(詩作)에 전념하게 됐습니다”라며 “제게 신춘문예 당선은 인생의 전환점 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 시인은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백두산 천지’라는 작품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그는 “이 작품은 제가 죽고 100년이 지나도 계속 이어질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작품 ‘백두산 천지’는 제9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으로 백두산의 위용과 모습을 할아버지와 어머니에 비유하는 등 섬세한 언어로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한 시이다. 이 외에도 그의 작품 중에는 제7회 동서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 ‘겨울강’을 비롯해 ‘1미터의 사랑’, ‘메롱 메롱’ 등의 걸출한 작품들이 있다.

뿌리를 찾으려는 ‘전통 시인’

 오 시인은 시인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30여 년을 교수 자리에 있으며 학생들에게 시를 통해 효와 뿌리에 대해서도 전해주고자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사라져 가는 세상의 뿌리를 가치 있게 여기게 하여 주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시를 보면 부모에 대한 효, 고향과 뿌리를 중요시하는 내용을 다룬 시가 많다.

 현재 한국시인협회장을 맡고 있는 오 시인은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국시인협회는 우리 시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가족과 우리말 사랑의 실천에 앞장서고 있어요”라며 “오늘날 모국어는 심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가족에 대한 애정도 식어 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현재 한국시인협회에서는 ‘토박이 우리말 시집’, ‘가족사랑시집’ 등을 만들었으며 2007년도에는 ‘국토사랑시집’을 만들기도 했다.

“제도에 굴복 않는 열정적 젊은이가 되라”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대학교수를 하면서 삶이 조금 넉넉해지면 시작(詩作)에만 전념하겠다고 항상 다짐해 왔습니다. 그 다짐을 지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지만 앞으로 시작(詩作)과 함께 오늘날 사라져 가는 시에 대한 애정을 되살리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오 시인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고독한 시간을 가지며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빠져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지 않아요.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을 포기하고 컴퓨터를 연구한 끝에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 회사가 있듯이 더 큰 것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의 고독한 시간과 도전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취업에만 혈안이 돼 취업과 관련된 공부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도권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열정적인 젊은이가 돼 주세요”라며 인상 깊은 교훈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