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충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거쳐 영광스럽게도 모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 운 좋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내 운이 좋았던 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충북대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의 한계를 서둘러 결정하고, 너무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한다. 대학생들의 꿈이 간장종지만 하다. 타인의 꿈을 비하할 수 있는 권한이 누구에게 있겠느냐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때, 마음 한켠에 뭔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진다.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모습은 최근 대학가의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학생활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밤새 막걸리를 마시며 개똥철학을 토론하는 모습이 아직 어딘가에는 남아있겠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는 말이겠지만, 대학생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너무나도 많다. 게다가 그 많은 권리들을 본인 스스로 계획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유’라는 특권이 학생들에겐 주어져있다. 대학생활에서만 가질 수 있는 낭만을 포기하고 스펙 쌓기에 4년을 할애하는 것도 학생에게 주어진 자유라면 자유이다.
대학생의 권리와 자유를 스펙 쌓기에 투자하기로 했다면, 눈에서 독기를 품어야 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뛰어들어야 할 전쟁터에 4년 일찍 나서는 것이니 말이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경쟁자이고 밟고 올라서야 할 상대이다. 하지만 여러분의 꿈이 조금이라도 더 크다면, 진짜 경쟁상대는 지금 옆에 있는 친구와 선후배가 아니다. 소위 SKY반 학생들이고, 외국에 유학하고 있는 간판 좋은 학생이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똘똘 뭉쳐야 할 전우이고, 끌어주고 밀어줘야 할 팀원인 것이다.
자유와 권리에는 책임이 수반된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대학생활에 여유가 없어져서인지 자유와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고, 책임지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듯하다. 과 MT를 가야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결정에 따른다. 장학금을 받지 못한 학생들의 부모님으로부터 학과에 항의전화가 온다. 오죽하면 대학에도 학부모회를 공식 발족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물론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학생이 대부분이니 일정 부분 보호자인 부모님의 의견을 듣고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결정에 따라 생활하듯, 대학생들도 그렇게 생활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듯하다. 술 마시고, 19금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 성인의 전부는 아니다. 부모님의 의견은 듣고 존중하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설득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결정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대학생활이고 성인인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거치고, 수없는 퍼덕임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창공을 자유로이 날게 된다. 대학생활은 날기 위해 수없이 퍼덕일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갖는 시기이다. 설사 그것이 당장은 힘들고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면 홀로 하늘을 날 수 있다. 학생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때, 본인이 하나의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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