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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욱
<기자 읽다> 서울과 무진 사이에서 길을 묻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제 996 호    발행일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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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진기행>은 김승옥이 1964년 10월 문학지 <사상계>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윤희중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제약회사 전무 자리를 장인으로부터 약속받은 윤희중이 고향 무진으로 잠시 휴가를 떠났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짧은 여정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일터와 집을 오가는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우리 학생들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과도한 경쟁과 현실적 타협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윤희중의 고향 무진은 안개에 휩싸인 도시로, 작품의 단순한 공간적 배경을 넘어선다. 도시의 특산물로 묘사되는 안개는 서울의 명확한 규범과 물욕, 책임에서 주인공을 잠시 벗어나게 해 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서울에서 그는 재벌가의 사위이자 승진을 앞둔 직장인으로 살아가지만, 고향 무진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자신이 피해 왔던 과거의 우울과 허무를 마주한다. 또한 일에 치인 자신에게 무진에 잠시 내려갔다 오라며 휴가를 권한 장인어른의 제안을 ‘퍽 영리한 선택’이라고 말하는 윤희중의 반응은 고향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애착을 드러낸다. 동시에 무진이 그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고향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는 무진 사람들이 타인을 모두 속물로 여긴다고 말하며, 자신 역시 타인의 모든 행위를 무의미하게 여긴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윤희중은 ‘무진’에 대해 양면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다. 마음에 안정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공간. 그에게 고향은 그런 곳이다.
  윤희중이 무진에서 만난 음악 선생 ‘하인숙’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던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한다. 윤희중이 이제껏 부정해 왔던 또 다른 자아를 마주한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껴 함께 서울에 가자며 미래를 약속하지만, 그 일탈은 아내의 전보로 인해 끝내 이어지지 못한다. 서울로 돌아가기에 앞서 하인숙에게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를 쓰지만, 이내 찢어 버리고 만다. 이처럼 끝내 완성되지 못한 하인숙과의 관계는 윤희중의 심리적 한계와 세속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마지막에 “비로소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라고 서술한다. 이 부끄러움은 무진에서 마주한 순수했던 자신을 포기한 채 다시 속물적인 서울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선택에서 비롯된다. 김승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 주인공의 씁쓸함을 담백하게 묘사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서울’과 ‘무진’을 오고 간다. ‘서울’에서는 나이에 따라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을 갖추려 스펙을 쌓고 자신을 재단한다. 이는 윤희중이 회사 전무가 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 왔던 모습과 맞닿아 있다. 때로는 ‘서울’에서의 모든 일로부터 벗어나고자 자신만의 ‘무진’으로 도피하지만, 결국 윤희중처럼 현실과 타협한 채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소설 속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그가 마지막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도피를 꿈꾸면서도 결국 ‘서울’이라는 속세로 돌아가기를 택한, 속물적인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수한 선택과 포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자각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자의식이다. 소설 <무진기행>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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