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앞에서 출발해 정북동 토성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상당공원까지 간 뒤, 그곳에서 30분 넘게 기다려 하루에 몇 번 운행하지 않는 841번 버스로 갈아탔다. 상당공원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친구가 없었다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여서 휴대전화를 보는 대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버스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버스 안이 여러 사람으로 북적였지만, 어느새 다른 승객들은 모두 내렸다. 친구와 내가 소곤소곤 나누는 이야기만 남은 채, 버스는 기사님과 우리를 싣고 정북동 토성으로 향했다. 시골길의 고르지 않은 노면 때문인지 버스의 흔들림이 몸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잊고 있던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는 길을 약 7분 걸어야 정북동 토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걸으며 느끼는 선선한 바람과 그리 따갑지 않은 햇볕, 토성에 가까워질수록 짙어지는 풀 냄새가 기대감을 높였다. 여기에 친구와 나누는 즐거운 수다까지 더해졌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편히 갈 수 있겠지만, 풀 냄새를 맡으며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마주한 정북동 토성은 성벽이 있던 곳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산이라고 해야 할까, 언덕이라고 해야 할까. 이름 붙이기 어려운 흙담과 그 위에 나란히 선 나무 세 그루가 나를 반겨 줬다. 저마다의 자리에 서서 하늘을 향해 뻗은 세 그루를 보니, 독립해 지내면서도 도움이 필요할 때면 늘 연락하는 두 언니와 내가 떠올랐다.
삼국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정북동 토성은 미호천 평야 중심에 흙으로 쌓은 정사각형의 성으로, 토성의 둘레는 약 675m이다. 성벽 바깥에는 해자를 파 적의 접근을 막았고, 성벽은 나무 기둥을 세워 흙과 진흙을 번갈아 다지는 판축 기법으로 쌓았다. 이러한 축조 방식을 통해 옛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결혼을 앞두고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들까지. 웨딩드레스의 흰색과 풀의 초록색이 이루는 대비가 눈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환하게 웃는 얼굴과 까르륵까르륵 천진난만하게 터지는 웃음소리로 가득한 풍경 속에서, 내 눈과 귀도 덩달아 즐거웠다.
성벽 위로 한 걸음씩 올라가 보았다. 구름 가득한 하늘이 바로 머리 위에 닿을 듯했다. 가까이에서 크게 보이던 사람들도, 걸어오며 마주한 드넓은 들판도 위에서 바라보니 작아 보였다. 내 눈에 크게 들어왔던 것들이 모두 작아지자, 이곳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과 오래 걸어 아팠던 발의 고통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도심을 떠나 자연 속에서 숨을 쉬니 나도 작아지고, 자연스레 내가 안고 있던 걱정도 작아진다. 복잡했던 머릿속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 자연 속 작디작은 존재가 되어 심신의 안정을 느끼고 싶다면, 정북동 토성을 추천한다.


양승주 기자
2023006011@chungbuk.ac.kr








양승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