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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세평> 인격으로 만나는 교수-학생 관계
제 834 호    발행일 : 2011.05.29 

 윤기호 영어교육과 교수
 
나는 교수가 할 일이 ‘열심히 공부하여 정성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믿는다. 겉으로는 편한 것 같으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 무거운 짐 덩어리를 지니고 살았지만, 과연 그동안 믿음대로 가르쳤나 하고 자문하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다음 세대의 주역인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과연 내 꿈을 보태어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을까? 아니면 개성이란 미명하에 내 고집과 관습을 강요하여 그들 상상력에 족쇄를 채웠을까? 생각할수록 두렵기만 하다. 여러 교수들이 학생들의 언행을 개탄하고 심지어는 그들로부터 받는 상처를 말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선생들로부터 받는 상처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배움 값을 치루는 학생들 가운데는 자의건 타의건 선생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충격을 받고 일생이 꼬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건강하고 밝은 장래를 준비시킬 임무를 맡고 보수를 받는 교수들의 책임은 자못 크다 하겠다. 교수가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하는 밑거름이나 안내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결코 나태할 수가 없다. 게다가 교수들의 언행이 학생들의 바람직한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고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귀감이 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한 바탕이 되도록 하려면 교수의 일은 정말 힘들고 두렵기 마련이다. 학생의 취업률이 교수나 학교 평가의 가장 큰 기준이 됨으로써 교수의 할 일 가운데 학생들의 인격적인 성장을 돕는 역할을 배제한다면 교수로서는 큰 짐을 던 셈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먹고 사는 일이 모든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된 비틀린 행동으로 자신과 사회를 망치는 일이 허다한 걸 보면 교수업적평가 항목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인격 형성을 돕는 일을 포기하거나 학생 스스로에게 맡기는 일이 과연 타당한가 묻게 된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감당하기 힘든 등록금과 요원한 취업 등의 이유로 자살을 한다. 그러나 이런 슬픈 현실은 언론뿐만 아니라 교수를 포함한 대학 구성원들의 관심사에서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학생 자신의 잘못이 아닌 사회와 제도의 탓으로 젊은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물거품이 되고, 가장 소중한 가치인 생명을 버리는데도 미안해하거나 책임을 느끼거나 재발 방지를 위해 고민하는 기성세대는 많지 않다. 그들의 죽음을 과연 의지가 약한 개인의 성격 탓이라고 돌려버리고 태연하게 취업에 필요한 지식이나 손해 보지 않는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담당 국가부서, 대학당국, 교수가 할 일인가. 겉으로는 진리 탐구를 내세우는 대학에서도 실제로는 명리(名利)를 큰 가치 기준으로 강조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대학 시절에, 남부럽지 않게 잘 먹고 잘 사는 목표 말고도 조금 덜 먹어도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거나 사회에 도움이 될 원대하고 고상한 꿈을 꾸어야 한다면 배부른 소리라고 비난받을까.  비록 현실의 시련을 겪으며 그 크기가 줄어지고 변색될지라도 젊을 때 큰 꿈을 꾸지 않는다면 인생의 의미가 생존 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고전 작품을 읽으며 역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분투하는 대목을 강의하노라면 금세 학생들의 얼굴엔 무관심과 짜증이 묻어난다. 저절로 좌절의 한숨이 나지만 지금은 허황되게 보이는 그런 꿈이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되고 언젠가는 역경을 이겨내고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 되리라고 마음을 추스르며 강의를 계속한다. 나는 학생들을 내 힘으로 당장 취직시키거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이나 이타적이고 헌신적 행위를 하여 주위를 감동시킬 자신이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을 아껴 공부하고 제대로 가르치는 방법을 고심하여 열과 성의로 가르치는 것이다. 교수가 있을 자리는 연구실과 강의실이고 그곳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성의껏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일 것이다. 부모의 마음으로 정성껏 그리고 따뜻하게.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은 바로 이 젊은이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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