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자신의 일생을 설계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삶을 영위하기 위해 공유하는 세계관이 있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일생동안 사회의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던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이것을 주로 관습을 통해 배우고 익혔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서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고 있는 요즈음은 농경사회처럼 관습을 통해 삶의 가치와 세상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새로운 것, 참신한 것에 대한 끝없는 요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새로움에 대하여 그것이 지향하는 바와 그것이 강조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오로지 전진만을 외칠 뿐이다.
그리고 이 끝없는 창신의 과정 속에서 각종 욕망들이 부딪치고 경쟁하면서 일부 낙오한 사람들은 잊혀지고, 남은 사람들은 자신이 낙오하지 않기 위해 낙오자들에게 온정을 베풀 여유도 없이 그들의 손을 내려놓고 다시 창신의 대열에 달려든다. 그리고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지도자들의 언행불일치와 권모술수, 부도덕, 뻔한 거짓말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은 물건을 팔기 위한 거짓 미소와 친절이 둘러싸고 있다.
우리는 단기적인 목표를 위해 금욕적인 자기실현의 노력을 벌이다가, 티브이 연속극의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우리의 도덕의식을 확인하고 사회에 대한 분노를 발산하며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래도 해소되지 않는 우울함은 마인드컨트롤이나 웃음치료를 통해서 풀어보려고 노력한다. 도처에 인간다움과 아름다움, 감동이 떠돌고 있지만 그것은 비누거품처럼 쉽게 터져버리는 가짜였음이 판명나는 경우들이 다반사이다.
나는 이 끝없는 창신을 요구하는 세상이 얼마나 막강한 위력을 지녔는지를 실감하지만 또 그것이 얼마나 허약한 철학에 기반하고 있는지도 느낀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첫 장면이 생각난다. 그는 텔레스크린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는 방의 한 구석을 찾아, 등을 돌린 채, 곰팡내 나는 고물상에서 산 노트를 꺼내, 가슴 두근거리며, 옛날식 필기도구인 만년필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곰팡내 나는 고물상, 종이, 만년필, 일기, 그리고 자기만의 비밀공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지 오웰이 그린 ‘1984년’의 세상처럼 이런 작고 평범해 보이는 것들과 대립하는 것일 따름일지도 모른다.
사회에서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전공을 가르치고 취업지도를 할 것을 요구하지만, 학생들이 그 못지않게 갖추어야 할 것이 자기의 정직한 감각과 판단을 신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세상을 비평할 수 있는 견고한 내면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내면의 힘은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인생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충일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할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새로움을 향한 끝없는 경쟁체제의 소용돌이 속에 떠오르는 문화의 거품을 간파하고 사회를 건전한 방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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