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중국 쓰촨성에 발생한 대지진. 그중 가장 큰 피해를 본 도시 웬추안에서 일어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당시 구조작업 중인 군인과 구조대원들은 폐허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그 형체는 무릎을 꿇고 손을 바닥에 댄 채 숨져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아래에는 한 아기가 있었다. 아기를 덮고 있던 담요에는 휴대전화가 있었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라는 메시지가 띄워진 채로.
가수 신해철의 노래 ‘아버지와 나’에서는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초라하고 힘없이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가 된 후 느낀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한다.
효에 관해서 이런 옛 말이 있다. ‘자식은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말을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성공하면’, ‘잘되면’, ‘나중에’ 효도하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효도가 꼭 성공한 후에, 잘된 후에 해야 되는 것일까? 위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 부모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는 때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부모님께 사랑을 드릴 때를 정해 놓은 것만 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부끄럽고 낯설어한다. 사실 그것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큰 힘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부모님께 그 간단한 문자조차, 전화조차 잘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요즘에는 가족이 다 모여도 많은 대화를 주고받지 못하고, 심지어 부모님의 생일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을까.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데 어떻게 효도를 얘기할 수 있을까.
예전에 들었던 교양수업에서 교수님이 부모님께 ‘사랑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라고 한 적이 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한 학생이 어머니께 ‘왜?’라는 내용의 답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내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요즘 시대에 자녀가 보낸 ‘사랑합니다’라는 문자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말은 즉, 평소에 그런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효도를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쉽게 할 수 있는 사소한 애정표현에는 서투르다. 사실 사랑한다는 그 말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첫 걸음이자 가장 강한 표현인데도 말이다.
우리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님의 주름은 더 늘어가고, 우리의 마음이 동심과 멀어질수록 부모님도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어릴 때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우리가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지내는 시간은 줄어만 갔다. 그리고 대학생인 우리들은 부모님을 뵙는 것조차 빡빡해진 생활이 돼 버렸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간간히 부모님께 ‘사랑합니다’는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로 전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 말은 어려우면서도 쉽고 쉬우면서도 어렵다. 하지만 먼 곳에서, 먼 미래에서 효도를 찾지 말자. 가장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일이 ‘사랑합니다’고 말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효도다. 사랑한다는 그 말, 그것은 아껴둘 것이 아니다.








박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