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오월이 오면 시인 묵객이 아니더라도 자연을 예찬하고 새 생명의 푸르름에 흠뻑 취하고자 산으로, 들길로 나선다. 그러나 이러한 흥취에 젖기 전에 잠시 눈앞의 자연 속을 직시해 보라. 저 신록의 색깔은 어디서 왔으며, 크고 작은 꽃들의 찬란함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 지금의 환희작약 이전에 메마르고 찬 서리치는 조락의 가을 동안 꾸밈을 벗어 버리고 묵연히 겨울의 눈보라와 차가운 바람, 고독한 까만 밤의 긴 시간을 온몸으로 맞으며 어떤 불평도 하지 않으며 꿋꿋이 견디어 이루어 낸 성취가 아닌가? 그리고 대학생들이 바로 보아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니겠는가?
대학생 여러분은 4년의 짧고 긴 준비기간을 거쳐 사회로 나아가 자신의 찬란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천지자연 일원으로서의 의무이며, 동시에 자기발현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바로 보야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생래적 자기인자의 발현 외엔 다른 길이 없으며 허용되지도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예외이다. 나무는 각기 종자가 다른 대로 싹트고 자라고 늙어서 스러지도록 그 자리에서 그 나무일 뿐이며 물고기를 비롯하여 날짐승 들짐승들도 매한가지이다. 잉어가 아무리 크고 뛰는 재주가 있다 한들 고래로 변신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을 보라. 사람만이 변신을 허용 받지 않았는가! 피부색과 출신 집안이나 지역, 타고난 재주와 관계없이 외모는 사람이나 한갓 미물만도 못한 천인으로 추락하는가 하면 만인의 신으로 모셔지고 추앙받는 성인으로 변신할 수도 있지 아니한가? 이러한 놀라운 전환은 무엇에서 연유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고양의 의지와 그 길로의 정진이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지식이나 기술 기능 같은 외적 자극과 학습을 통하여 얻게 되는 성과적 고양이 아니라 성찰과 온전한 깨달음을 통하여 천하를 두루 품어 막히거나 치우치지 않는 인격성취가 개인의 무한 변신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그게 대학생들에게 가당키나 한가? 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기고양은 궁극의 완전한 경지가 아니라 안으로는 자신의 출발과 진행과 도달목표를 바로 살피고 밖으로는 인류공영에 합일하는 인류애의 연습과 실천을 말한다.
대학 4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나는 대학에 왜 들어와서 이렇게 심신을 연마하고 있으며 목적지는 분명한가, 오늘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나는 자신이 도달하기로 한 노정에 바로 서서 수련과 연마의 내공을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희, 노, 애, 오의 물결과 바람에 떠밀리고 흔들리거나 제 발로 찾아 들어가 도취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살피고 경계하는 것이 곧 자기고양의 시작이다. 공자에 의탁하지 않아도 혼자일 때도 바르고 밖에서 함께일 때나 지나치는 모두에게 꾸밈없이 예를 잃지 않음이 자기고양의 작은 성취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자기고양이 도달하기 지난한 히말라야의 고봉도 아니며 문득 나서도 이내 다가설 수 있는 뒷동산 언덕도 아니다.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부모와 이웃에 떳떳하며 인류사회에 거짓되지 않음이 경지에 이르는 전 노정이라 하겠다. 보통사람이라도 자기고양을 소홀히 하지 아니하면 사람의 도리를 얻을 수 있거늘 하물며 학문을 닦아 넓은 세상에 자기 꽃을 활짝 피우고자 뜻을 세운 대학생 여러분에게 자기고양의 절실함을 새삼 일러 무엇 하겠는가?
지금은 초고속 전자정보 시대로 대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시종으로 부리며 시대를 한껏 향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 또한 스마트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시대의 요구이다. 육신의 능력이 부단한 훈련으로 얻게 되듯 인격은 정신의 고양을 통해 완성할 수 있다. 대학생들이여 이제 자기고양은 선택이 아닌 시대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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