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나무와 하늘은 뽀얗게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경찰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는 교정에서 나는 나의 20대를 보냈다. 지금도 대학을 다니는 나는 요즘 학생들의 생활이 내가 다니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어스름이 내릴 무렵 80년대의 내가 친구들과 주점에 자리 잡고 숟가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면 요즘 대학생들은 카페에 앉아서 달콤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스마트폰에 하루를 담는다. 80년대의 내가 사회와 변혁, 거대담론에 열을 냈다면 요즘 학생들은 개인과 안락, 섬세한 감성을 즐긴다.
그렇다고 지금 대학생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즉흥적인 재미에 빠져 생각할 줄 모른다는 일부의 질타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와 지금 학생들의 생활과 감성이 다른 것은 시대가 다르기 때문일 따름이다. 내가 살았던 시대는 한국이 막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적 도약을 이루기 위해 전사회적 진통을 겪고 있었던 반면, 지금 한국은 2010년 그 경제력이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상대적 안정을 누리고 있다. 상이한 시대를 사는 청춘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세대가 아무리 다르다고 해도 나와 지금의 학생들 모두에게 똑같은 게 있다. 80년대의 나도 대학에서 20대 청춘을 보냈고 지금 학생들도 대학에서 20대 청춘을 보낸다. 가정과 학교 경험만을 갖던 어수룩한 고등학생이 대학을 거쳐 복잡하고 거대한 사회로 진출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세상에 대한 의문과 갈망, 자신에 대한 회의와 욕망, 사회적 기대와 호기심을 안고 주변을 관찰하고 고민한다. 인간은 누구나 개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매 개인은 이전 세대들이 이미 고민하고 겪고 해결했을 문제들을 다시 껴안고 밤잠을 설치며 힘겹게 씨름해야 한다. 이것은 어찌보면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또 그 때문에 각 개인은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가 주인인 자신만의 세계를 꾸려날 수 있는 것이다.
어느새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고 보니 나의 인생의 정점은 청년기였다는 것을 절감한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청년기를 정점으로 하여 그 이전은 청년기의 꿈과 회의, 갈망을 형성하는 시기였고, 그 이후는 청년기의 그것을 이루고 해결하고 포기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청년기에 그 씨앗이 뿌려졌던 것이고 내가 이곳에 있게 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청년 시절에 내가 발산했던 몸부림과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살고 있다.
청년시절에 깊고 넓은 고민을 한 사람일수록 청년 이후의 삶이 광대해지고 다채로운 것 같다. 청춘은 아는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모르는 것이 많아 청춘이고,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갖고 싶은 것이 많아서 청춘이다. 알고 싶은 것이 많고 갖고 싶은 것이 많아서 청춘은 고민도 많고 방황도 깊고 실패도 잦은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 청춘 이후가 여전히 싱그러울 수 있다. 청년시절에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뚜렷한 주관을 가졌던 사람은 청년 이후의 삶이 단조로울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청춘의 고민은 추상적일수록 좋고, 강렬할수록 좋고, 넓을수록 좋다.
나는 지금도 대학에 다니며 여전히 청년의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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