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만(불어불문학과 교수)
21세기 들어서서 첨단 과학기술로 인해 생활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인간은 이제 자신의 미래를 그려내기 어려워졌다. 인공장기, 인공심장, 인공지능, 유전자 복제까지 SF소설과 SF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상상들이 현실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오스트리아 행위예술가 스텔락(Stelrac)은 1970년대 이래로 사이보그를 연구해오면서 신체의 퇴화를 선언했고, 1998년 영국의 레딩대학 교수 케빈 워릭(K. Warick)은 자신의 팔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사이보그 실험을 전 세계인들에게 직접 보여주었으며,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B. Mazlish)는 자신의 저서〈네 번째 불연속〉에서 인간과 기계의 연속성을 설파했다. 이들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주장되는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는 인간 자신을 정신적・신체적으로 강화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이런 시대분위기에서 인간의 자연선택적 진화는 점차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학자들은 기술선택적 진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영생까지 예견되는 ‘포스트휴먼(Posthuman)’의 등장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주장이 그저 허황된 것으로 내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투자되고 있는 나노, 바이오, 정보, 인지(NBIC: Nano, Bio, Info, Cogno) 등 선택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은 자연의 비밀을 캐내어 모방하고 다양하게 변형하면서 새로운 변종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므로, 기술선택적 진화는 낙관적이기만 한 주장을 넘어서고 있다. 더욱이 진화하는 기술들은 인간의 욕망을 자기화하고 있으며 매일 그 진화의 과정이 미디어를 통해 보고되고 놀라운 성과물까지 제시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인간의 불완전성과 기술오용이 의심받으면서 그로 인한 인류의 멸망까지 예견되기도 하지만, 인간은 과거보다 더 기술과학을 신뢰하며 의존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관한 담론이 무성해지고 있다. 실제로 기계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기계적인, 너무나 기계적인’ 존재로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상상과 현실 간의 상호작용에서 형성되는 인간과 기계간의 연계성은 정체성 문제를 뜨겁게 달구기도 한다. 그만큼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변해가고 있는 인간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오늘날의 당면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21세기는 인간학에 대한 재개념화를 요구하고 있다. 인간은 본래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일 수 있으며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오늘날 기계문명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 때문에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 이 글은 김연순 박사(성균관대 하이브리드 미래문화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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