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효진(국어국문학과·09)
꿉꿉한 냄새가 나는 옛날 외할머니의 집 한 칸에 다리를 접고 앉아서 세 모녀가 밥을 먹고 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엄마는 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 고개를 창호지문 쪽으로 돌린 채 울음을 참고 있었다.
억세기가 철 지난 무청 시래기 같은 우리 엄마가 처음으로 우리들 있는 앞에서 눈물을 밥숟갈과 함께 삼키고 있는 것을 보니 내 시선은 제자리를 잃었다. 뭣 모르는 동생은 밥그릇에 코를 박고서 자기 입 채우기가 바빴다. 내가 아는 척을 하지 않아야 엄마가 더 이상 울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공부가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시절 탄광촌 동네 여자애들이 다들 가는 상고를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밤 12시에 공부를 마치고 홀로 둑을 따라 집을 향해 걸어오면 몸을 감싸는 시커먼 어둠이 무서워 노래를 부르며 발걸음을 내딛었고 사과 상자를 책상 삼아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아버지가 일을 시키려고 영조야, 한 번 부르고 또 두 번 부르고 결국 이놈의 가시나가 일 안한다고 서슬퍼런 눈을 하고서 빗자루를 들고 다락 위를 올라왔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꺼죽한 얼굴을 하고서 조용히 놀러 다니는 스무살의 교대생이 되었다. 한창 물오른 세련된 동기들 사이에서 치마 한 번 못 입어본 채 첫 학기가 끝나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폐암환자가 되어 숨이 차 누워계셨다.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에 대해 도저히 측은지심이 들지 않아 헉헉대며 엄마 이름을 부르는 그 모습을 외면했다고 한다.
이렇게 엄마는 종종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추우나 더우나 매일 아침 일찍부터 상회 일을 돕도록 시켰고 손찌검도 자주 하셨으며, 술과 담배를 즐겨하여 부인의 속을 무던히도 썩인 옛날 어른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엄마의 이마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병석일 때 살뜰히 돌보지 못해 회한이 인다는 말이 더해졌다.
그날도 다른 날과 같이 외할아버지 이야기가 조금 꺼내진 것뿐인데 엄마가 왜 눈물을 보였는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밥상에 마주 앉은 나는 그저 속으로만 우리 엄마의 그리움,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름 붙인 그 아픈 그리움에 대해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겉으로는 보란 듯이 씩씩하게 밥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고 씹어 넘겼다.
시간이 흘러 내가 더 자라고 나서 엄마에게 어렸을 적 외할머니 집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 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른들은 기억해야할 것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잊어버린다고도 했다. 대신에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외할머니집의 냄새, 새로 바른 창호지 문, 까슬한 자리가 깔린 방바닥, 세 개의 스덴 밥그릇과 감추지 못했던 엄마의 눈물을.
자식의 역할이 부모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기억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 밥상에서 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윈 무뚝뚝하고 여린 소녀, 나의 엄마를 보았다. 그 모습은 당신의 아버지가 떠나고 남은 그리움의 세월만큼 단단한 생활의 껍질을 갖게 되었지만 그 속은 여전히 표현이 서툴고 속정 깊은 촌 동네 일성 상회집 둘째딸이었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