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들을 보면 가사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랩으로 빠르게 불러서만은 아니다. 가사 자체가 일관성 있는 의미 있는 단어로 연결되어 있지가 않다. 예전의 노래는 가사에 주제가 담겨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슬퍼한다거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 어머님께 바치는 노래 등등. 그러나 요즘의 노래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가사만 보고는 갸우뚱해지는 경우가 많다. 어법에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일전에 어느 신문에 난 기사에 의하면 최근 한류열풍에 힘입어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여서 이들에게 한글을 재미나게 가르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젊은 한국 아이돌 그룹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한국어 교재로 사용하려고 시도 해 보았는데 어법에 맞지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젊은이들도 이점은 인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이것이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돌 그룹들의 현란한 몸놀림, 무대를 비추는 화려한 조명, 강렬한 반주, 콘서트에 참석한 관객들의 함성 등 이러한 것이면 젊은이들이 환호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들에게는 의미가 담겨져 있고 어법에 맞는 가사 따위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노래, 춤, 영상, 조명, 의상, 함성이 어우려져 만들어 내는 하나의 커다란 퍼포먼스를 영상 세대답게 눈으로 보고, 감각으로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그러나 이러한 무의미한 일탈의 즐거움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가슴 찌릿한 감동과 희열을 선사하는 것은 의미있는 몸짓, 가치창조를 위한 땀방울, 목표를 향한 질주가 아닐까? 이번 런던올림픽은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다.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인상에 남는 경기는 축구의 동메달 결정전으로 벌어진 한일전이었을 것이다. 치열한 투지와 승부에 대한 강한 열정으로 90분을 내달렸던 우리의 젊은 선수들 그리고 미칠듯이 운동장을 질주하며 승리를 만끽하는 모습에 대한민국도 다함께 열광하였다. 올림픽이 막을 내린 후 축구를 비롯하여 많은 메달리스트들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올림픽을 위한 훈련과정과 선수생활을 통하여 겪은 좌절과 극복과정 등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줬다. 축구에서 최초로 대한민국에 올림픽 메달을 안겨준 올림픽 축구팀의 주장 구자철 선수는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그가 이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인 한일전을 준비하면서는, 작년 8월 삿뽀로에서 벌어진 일본대표와의 평가전에서 3 대 0으로 대패한 뒤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록하였던 그날의 일지를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일본과의 대전에서 필승을 다짐하였다고 한다. 경기에서 패스를 할 때도 평소에 상대방의 위치나 작전에 입각한 패스나 공격 형태를 미리 공부하여 연습에 의한 패스를 한다고 하였다. 경기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또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정립하여 준비하고, 또 시합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듬직하게 느껴졌다. 유도의 김재범 선수는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과 탈골의 부상을 무릅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픈 어깨 때문에 한손을 쓰지 못하면서도 얻은 영광이다. 운동을 그만두라는 아버님의 안타까운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있는 삶, 의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하여 모든 고난과 아픔을 극복하고 훈련에 매진하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낸 성과이다. TV에 출연한 그밖의 많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얼굴에서는 모두 한결같이 하늘에서 천도 복숭아를 금방 따온 사람처럼 내면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희열이 뿜어져 나왔다. 그들이 의미있는 삶을 살기위해 절제와 희생을 한 결과물이다. 무의미한 일탈의 즐거움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가슴 찌릿한 감동과 희열을 선사하는 것은 의미있는 생각과 행동, 가치창조를 위한 땀방울, 그리고 뚜렷한 목표를 향하여 내딛는 힘찬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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