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한 기업의 홍보광고 중에 “역사는 일등만 기억합니다”라는 광고문구가 있었다. 당시 이 광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공감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기업은 지금 세계일류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일등이 된다는 것은 경쟁을 통해 모든 경쟁자들을 제치고 이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쟁은 사람들의 나태함을 억누르고 일의 능률을 높여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근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우리는 일생을 경쟁속에 살아간다. 태어나 밥을 먹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밥을 잘 먹게 하려고 ‘누가 일등으로 밥을 먹나’하며 은연중 경쟁을 시킨다. 말을 배우고 교육이란 이름의 배움이 시작되면 우리는 시험성적을 기준으로한 서열에서 일등을 하기 위해 경쟁한다. 이 때부터 우리는 상위서열의 대학교에 진학해야만 상위서열의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상위계층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어른들로부터 세뇌를 받으며 일등을 하기위한 경쟁에 내몰린다. 역사는 일등만 기억하고, 일등만이 행복하며, 일등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는 강박관념 속에 교육은 서열을 정하기 위한 경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학생들은 일등을 하기 위해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 버린다. 대학이 정해지면 취업을 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다. 높은 학점, 높은 토익점수, 남들보다 많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경쟁한다. 경쟁에 이겨 어렵게 취업에 성공하면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린다. 업무실적, 인사고과, 승진, 연봉 등등…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쟁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인간의 무한 욕구와 한정된 자원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불가피한 경쟁이라도 그것이 ‘어떤 경쟁이냐’에 따라 그 명암은 뚜렷하게 갈릴 수 있다. 맹목적인 일등지향의 경쟁, 출세지향적 경쟁,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경쟁, 불공정한 경쟁이 판치는 사회라면 그 미래는 암울할 수 밖에 없고, 이런 사회에서 교육이 바로 서기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유교의 영향 탓인지 출세지향적 가치관이 오랫동안 우리사회를 지배해 왔다. 그렇다 보니 ‘사’자 직업을 갖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고 이것이 출세의 잣대가 되었다. 언젠가부터는 ‘돈’이 ‘사’자를 제치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출세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은 물론 자녀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그 경쟁에서 일등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좌절을 맛 본다. 이 좌절은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 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이젠 먼 옛날의 얘기라며 탄식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 교육현장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교육은 항상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개혁과 쇄신의 대상이 되었다. 교육이 바뀌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은 항상 개혁과 쇄신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 시작은 생각의 전환이다. 이젠 출세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경쟁을 해보자. 행복은 결코 높은 지위와 돈으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얼굴과 성격이 다 제각각이듯 행복의 기준 또한 제각각이다. 행복의 기준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우리교육은 획일화된 서열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잣대가 존재하는 경쟁을 통해 학생들이 행복을 느끼고 찾아가는 길을 인도하고 방법을 알려주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학생이 행복해지고 사회 전체가 행복해지는 교육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 모두의 생각과 가치관의 전환에서 시작해야 한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