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나는 누구보다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을 많이 가진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술도 마셔보고 예쁘게 꽃이 핀 학교를 여자친구와 둘러보기도 하는 캠퍼스 로망.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한창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도 여러 대학교 중에서도 캠퍼스 풍경이 특히 예쁜 곳을 꼽아 지원할 만큼이었다. 그리고 나는 현재 내가 생각했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캠퍼스 크기도 크고 전경도 예쁜 우리 학교 말이다. 스무 살이란 나이와 함께 입학한 대학교는 설렘의 연속이었다. 계절에 따라 피는 꽃만 봐도 설렜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듣는 수업도 설렜다.
아마 모든 학생들이 그랬을 것이다. 다들 처음엔 새 학기의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시작한다. 하지만 학기가 계속될수록 점점 캠퍼스 로망보다는 학점에 더 신경을 쏟게 되고, 많은 과제를 감당하는 때가 온다. 학점, 과제, 토익공부 등 저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면 학기 초 설렘은 온데간데없는 그저 똑같은 일상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고된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일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 목표를 향해서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일의 능률이 자연스럽게 오르게 될 것이다.
1년 전 나는 원어민 교수님이 가르치는 영어수업을 들었다. 키가 큰 내가 올려다봐야 될 정도로 키가 크신 영국인 교수님과 스무 명 남짓한 같은 학과 친구들이 함께 듣는 수업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원어민 수업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에 임했다. 무엇 하나 특별한 것 없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수업이었지만, 처음 접해본 외국인 수업이라 너무 재밌었고 설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수업을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학점 또한 잘 받게 됐다. 이 영어수업을 들으며 나는 논어 첫 구절인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생각났다. 비록 늘 똑같고 반복되는 수업이지만 스스로 학기 초의 설렘을 생각하며 수업에 임한다면 모두들 즐겁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 가지 더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즐거움을 찾을 때 내가 보상받는 것을 생각해보자. 부모님에 대한 효도일수도 있고 나를 위한 투자일수도 있다. 이런 마음을 기본에 두고 생활한다면 고된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이 조금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일을 진행한다면 취업이든 학점이든, 토익이든 장학금이든 직접적인 수단으로도 응답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앞서 말했던 논어의 첫 구절처럼 부디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학우들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 기쁨을 찾길 바라며 글을 끝맺는다.
※ 외부 필자 기고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