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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옛날신문 다시보기] 남루자(襤褸者)의 변(辯)
제 859 호    발행일 : 2013.03.18 
충북대신문43호(1965년 3월 20일자) 게재 수필

김영태(金榮兌/농화학과·64)
 
  지난 겨울방학중의 일이다. 집안심부름으로 호남선에서 올라오는 서울행 열차에 몸을 담은 후 부터가 말썽이다. 으례 그렇듯이 그날도 열차는 정시에서 약 30가량 연착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타려던 그 열차는 항상 만원인데 게다가 연착까지 해놓고 보니 차내는 몸을 움직일 수 업을 정도로 붐볐다. 조치원까진 그런대로 무사히 갔으나 문제는 훨씬이전 아니 어쩜 나(我)라는 한 사람의 취미(의복에 대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되겠다.
  조치원역을 열차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을 때 옆구석에 찡겨 서 있던 20여세 안팍의 촌색씨 하나가 갑작이 양쪽 오바 호주머니를 뒤지면서 부산을 떨기 시작한다. 한참 그러드니 얼굴이 샛노래지면서 대전 언니네 집에서 얻은 돈 천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두눈엔 눈물이 글썽이고 “천안서 차를 갈아타고 예산까지 가야하는데 어떻거느냐?”고 자꾸 “아이참”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제서야 그 옆에 서 있던 사람들도 얕팍한 동정이나마 담은 듯한 눈초리는 고사하고 서로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위를 휘휘 둘러보면서 입으로만 건성 “그것 참” “그것 참”하고 있다. 한참 그러더니 그 수십개의 경계의 눈초리는 일제히 내 한놈을 초점으로  하고 한 곳으로 멈추어 버린다. “이상하다” 싶어 내 모습을 아무리 둘러봐야 전하고 다른 점은 하나도 없었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두눈만 멀뚱멀뚱 뜨고 수십개의 눈초리에 한참 대항하다 그 여러개의 경계어린 눈초리가 나에게만 집중된 까닭을 깨달은 것은 한참후의 일이다.
  죄는 남루한 내 옷차림에 있었다. 남보다 검은 피부, 못생긴 얼굴, 낡디 낡은 윗 아래 작업복, 멋 없이 길죽한 키, 게다가 손에는 꿰꿰묵은 책까지 들고 있으니 그네들의 눈에는 태초로는 “조물주의 대표적 실패작품”이요, 현실로는 “전형적인 소매치기”로 보였음이 틀림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여자 호주머니속의 돈을 실례(?)한 자는 틀림없이 나로 인정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한두사람의 눈에 그렇게 비친것이 아니고 그 주위에 서 있던 모든 사람의 눈에 한꺼번에 비쳤던 모양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고소(苦笑: 쓴웃음)만 씹을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를 향해 뭐라고 변명한단 말인가? “나는 도둑놈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한 지성인이라”고 외친다면 오히려 더욱 그네들의 의심만 짙게 해줄 것 같고 그렇다고 “지성을 파는 도둑놈”이라면 긍정할지 몰라도 그 사건관 얼토당토 않고…
  꼼짝없이 의심의 대상이 되는 도리밖엔 없었다. 그건 좀 뚜렸한 예었지만  그와 비슷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시내뻐스를 타고 학생요금을 내면 차장들은 “학생이슈?” 묻곤 학생증 제시를 요구한다. 몇원이 돈 때문에 인격을 무시당하나 생각하면 당장 울화통이 치밀지만 사이비 대학생이란 작자들이 종종 대학생을 팔아먹고 다니기 때문에 어리고 순진한 차장들마져 일단 의심해보는 것을 느낄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기에서 나의 의목에 관한 생각 일단(一端: 한 끝, 한 부분)을 적어본다. 난 의복에 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것이 소위 신사들이 입는 고급 신사복이건 혹은 일할 때 입는 작업복이건 일기만 했으면 그걸로 족하다. 오히려 작업복이 아무데서나 털썩 털썩 마음대로 주져앉을 수 있어 더욱 편하다.
  좀 누추한 방에 고급양복을 입고가서 어색하게 쭈구려 앉기보담 작업복으로 마구딩구는 것이 얼마나 더 편하랴! 워낙 부족해 실제 가보진 못했지만 책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자유중국(대만) 대학생들은 거개가 다 작업복으로 교복을 삼고 한쪽 어깨가 축 처지도록 무거운 가방을 메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며, 영국의 일류 인사들도 가죽으로 양팔꿈치와 양 무릎을 기워입는건 보통이라하니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 좀 헐은 작업복으로 성장한다고 해서 험될건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자기가 옷을 못해 입는 것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한 변명에 지나지 못한다고 해서 비웃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벌의 옷을 못해 입으리만큼 어렵진 않다. 집에서 옷해 입으라고 주는 돈은 “책 모으기”라는 좀 돈이 드는 취미를 살리다보면 옷은 돈을 받기전이나 다름이 없다. 단지 변하게 있다면 서가(書架) 위의 책꽂이에 몇몇의 새로운 친구가 생겼을 뿐이다.
각설하고 지금 그때 일을 회상하면 그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의 뇌리에 오랫동안 내 모슴이 소매치기의 상으로 남겨질 것을 생각해서 쓴웃음이 어릴 뿐이다.
 
※ 편집자 주 : 당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부연설명과 문장부호 외에 다른 수정은 하지  않았다. 64학번이신 김영태 선배님이 쓴 이 글은 왠지 모를 향수를 자극한다. 요즘도 간혹 기차가 연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 당시는 “으례 그렇듯” 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입석까지 꽉찬 열차, ‘시내뻐스 차장’ 등은 지금은 사라진 아련한 향수다.  ‘촌색씨’, ‘오바’ 같은 단어도 정겹다. ‘천원’을 잃어버리고 눈물을 글썽이는 촌색씨의 당혹감과 남루한 외모 때문에 손매치기로 의심 받는 저자의 상황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무엇보다 당시 대학교 2학년였을 저자의 의복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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