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는 봄과 함께 새 학기가 시작된다. 추위를 완전히 막아내려는 듯 두꺼운 겨울옷을 입은 사람과 춥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잔뜩 멋을 부린 봄옷을 입은 사람. 캠퍼스는 그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입은 옷으로 다채롭다. 대개 봄꽃처럼 알록달록한 봄옷을 입은 사람은 새내기들이다. 나도 역시 그런 시기를 거쳐왔다. 비록 몸은 추위에 덜덜 떨지라도 이제 대학생이, 어른이 되었다는 기쁨으로 추위를 느낄 새도 없다. 이미 캠퍼스가 익숙해진 2학년, 3학년, 4학년 사이에서 새내기는 이런 활력을 불어넣는다. 새로운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낯선 활력, 그래서 학기초는 긴장되는 동시에 신선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전과 다른 긴장이 섞여 있었다.
남자 대학생에게 2학년은 하나의 선택의 시기다. 1학년을 마치고 바로 군대를 가느냐, 2학년까지 계속 공부를 하느냐. 여학생들은 별로 공감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남학생에겐 소위 ‘신의 아들’이 아닌 이상 입학할 때부터 결코 떠나지 않는 화두임에 틀림없다. 물론 사람들이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물으면 대답할 것은 변변치 않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대학생활 내내 영향을 미치는 것은 틀림없다. 여학생이 애인을 선택할 때도 떠나지 않는 질문이 군필인지 미필인지이고, 대학생활 내내 공부와 노는 것의 사이에서 중요한 무게 중심도 군대에 있다. 대개 군대를 다녀온 다음에 남자들은 진짜 대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 나 역시 조만간 입대하겠지만, 내 친구들은 군대에 갔거나 갈 예정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반쯤은 군인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난 캠퍼스에서 맞는 봄조차도 두 개의 봄으로 보인다. 내가 캠퍼스에서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군에 입대해서 군인이 된 친구들은 어떤 봄을 맞이하고 있었을까.
3월 캠퍼스에서 사람들이 설렘에 몸을 떨고 있다면, 군대에선 군인들은 다른 의미에서 몸을 떨고 있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과 정전 무료화 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캠퍼스에 있는 우리는 분노하고 그 문제에 대해서 얘기할 뿐이지만, 현재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 그것은 실체로 다가오고 있다. 가장 민감한 휴가나 훈련 강도뿐 아니라, 많은 면에서 부대에 있는 친구들은 그 위협을 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봄이 오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차가운 겨울, 그리고 주변을 바라봐도 냉랭한 기운만 흐를 뿐이다. 나 역시 친구들이 느끼는 군대에 대한 이야기가 낯설고 생소하다. 그 점에서 난 캠퍼스의 봄에 속해 있다. 나 역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곤 하지만, 그건 캠퍼스에서의 봄일 뿐이다. 하지만 내 다음 번 봄은 군대에서 보게 될 것이고, 그럼 난 캠퍼스의 봄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지금은 군대에 입대한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나와 같은 나이의 누군가가 캠퍼스가 아닌 전방에서 이곳과 다른 온도에서 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캠퍼스에 있는 우리가 당장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각자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각자의 봄을 보낼 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비슷한 또래 중에 전방에서 봄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