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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옛날신문 다시보기] 바람속의 에드랑제
제 860 호    발행일 : 2013.04.01 
충북대신문54호(1966년 3월 25일자) 게재 수필

 정상길(鄭相吉 /농화학과·3)
 
  ‘하지말라’로 만성이 된  나의 생활에서 ‘반대’를 ‘반대’하고 여정에 오른 것이 크리스마스 캐롤도 아주 익을 무렵, 시간은 을사년(1665년) 12월 22일 아침 7시 30분을 알리고 있었다.
  색다른 날씨에 차내(車內)는 말이 심했고 여전한 차창엔 분주한 군상, 나의 아기씨의 모습과 그 감사한 술에 취하면서 선의(仙意)만을 뇌까리다 보니, 충주땅엔 낮이 한창, 상가(商街)엔 거구의 싼타크로스 할배들과 그들의 식구 뿐이다. 주점의 인연에 미련을 남긴채 한강상류를 굽고 돌아서 제천에 들은 것이 철따른 바람끼가 돌고, 어둠이 반쯤 되는 허허로운 시간이었다.
  연착투성이의 섭한 일기예보에 잇대어 창 밖으론 눈이 휘어지게 날려서 나의 만수무강엔 아무래도 낯이 익는 담배연기 인심, 시골탁주꾼이 한양에서 울게 된 것은 23일 저녁 6시, 영하의 거리엔 싸늘한 불빛으로 얼어붙는 답답스런 잡(雜)소리와 애매한 형태로 쫓기던, 마시고 취하는 혁명에 그 모두가 나로한 복잡사상(複雜思想)이었다. 조국의 탓도 못되는 가난한 친구의 자췻방에서 춥고 배고픔을 털어 놓다가 밤 0시가 지나서는 쉽사리 늘어지고 말았다.
  마시고 취하라고한 자신이 숙명앞에 개인전(個人展) 술상(?)을 벌리다가 허탈하게 뭉뚱여진 허기찬 웃음으로 눈 감아두기 서너시간, 장항행 열차는 쉴 새가 없이 달렸는데 구사일생으로만 즐거움을 닫아두는 나의 눈빛엔 누더기 입은 나의 싼타크로스 할배가 이 시간 얼마전 연탄 gas 중독사고로 절명했는가 싶어 언잖은 대로 촛불을 키기로 했다. ‘여자가 제일 좋아’로 만고기진한 기차내의 딴따라족들의 꽤도 높은 목청엔 아연실색, ‘징글날 징글날 징글 맞은 날’ 운운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잦은 중에 열차는 정거장을 몇번씩 갈아가곤 했다.
  42원 짜리 무허가 하숙집에서 엽서 몇 쪽에 나의 크리스마스 전야를 충남 광천땅에서 장사 지내고, 마음 간간히 서해를 찬미 하다가 ‘말이여’의 고장 군산에 도착한 것이 25일 오후, 싱거운 탁주와 국수 10원에 나는 다시 이리로, 내 넋을 자리 하곺은 넓잔 평야를 차창으로 흘려보며 고전적인 첫 반김을 주는 전주에 닿았다. 아직도 긴 여정에 내심의 희열을 느끼며 여수행 특급에 몸을 맡기고 호화판 차내에서 취미 없는 낮잠을 즐기기 몇 시간, 후끈한 날씨에 남국의 호소가 깊은 여수의 밤거리를 보았다. 하마트면 섬이 되었을 굴곡이 심한 여수시가지, 알아듣기 어려운 심한 사투리에 부두의 술맛은 썩 나쁜편으로 엽전 몇 푼 없이 잔뜩이나 몸을 감싸도 냉기의 습격이 여지없는, 기십원짜리 무허가 하숙집에서 인심이나 또락서니나 걸뱅이 면치 못한 25일 밤이 넘어갔다.
  분주하기 마련인 여수항에서 ‘경복호’에 올라 8시간의 갑판여행이 비롯된 것이 26일 아침 8시, 잔잔한 아침바다에 햇살은 눈부시고 갈매기 울음이 높은 곳에 고기잡이배가 줄을 이었다. 한겨울의 훈훈한 바닷바람 올망졸망한 섬들로 밀치고 밀리고들 하는 주위 모두는 열두폭 그림이 되고, 달 뜨는 밤이면 아베크족이 끊이지 아니한다는 ‘오동도’를 삥글 돌아 ‘이순신 장군’의 넋이 남아 사는 ‘노량진’을 거치니 3등선실엔 대부분이 장사치들, 또 돌풍을 이겨 사는 검은얼굴들의 우악스러운 대화며, 아니면 그만한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엷은 고동에 잘도 내닿는 ‘경복호’가 유행가 사연이 얽힌 영도다리를 지나 부산항에 닿은 것이 26일 오후 2시, 부산역전 탁주센터에서 여정을 풀기 급급, 밤이 익기까지 피로가 몸에 겁쳐 있었다.
  유아독존의 완전무장이 가치하락한 부산시가지는 그 짜롬한 거리의 표정도 밝다. 그 시간뒤로 울산, 경주로 해서 눈에 익은 포항시가에 감회 깊게한 것이 27일 오후 2시, 술을 키면서 엽서쪽에 미소를 담기 몇나절. 나의 모습에서 처량한 인상을 캐어묻던 지난 여름철 무전여행 시의 반사조건의 여주인공들과의 재회로 마연되 그 유서깊은 우상국 울릉섬으로 향하는 나의 입가에 의미로운 전송의 잔치가 베풀어졌다 . 많은 시장끼를 아는 인정으로 씹으며 ‘사망보험일체신고(?)’를 마친것이 27일 오후 8시, 3등선실표를 눈여겨 접어놓고 그들 철새틈에 끼인채로 여주인공들과 건배(?)를 함께 나눈 뒤에 ‘청룡호’에 오른 것이 밤 9시쯤, 그저 하늘에 맡긴 목숨이 되어 그나마 발목조여드는 3등선실에 한일자로 눕고 부턴 운명론자의 일원에 속하는 여행이 27일 밤 9시부터 시작되었다.
  선창에 번뜩이게 반사되는 네온등, 보내고 떠나가는 사람들로 소란한 부두에 마침내 고동이 길게 울려 퍼졌다. 곧 바로 항구사방으로 찌렁이는 이별가가 터져나오기 시작, 그 전송이 ‘라노비아(실연당한 한 남자의 마음을 표현한 Tony Dallara의 히트곡)’가 되고, 또 내겐 ‘논호레타(당시 16세였던 Gigliola Cinquetti 의 노래로 당신을 사랑하기엔 난 아직 어리다는 내용)’였는데, 저 멀리 불빛이 아득해지자 노랫가락은 끊이고 이내 엔진이 세차게 걸렸다. 멀리 외국으로 떠나가는 심정, 처음으로 바다와 육지의 구별에는 몹쓸 눈물이 사는 이유를 알고, 나데로의 뭍의 회포를 수 놓는데, 기관은 자꾸 엔진만을 높이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기 두어번, 어수선한 잠에서 깨어나니 시간은 28일 0시 15분, ‘청룡’의 기관은 여전히 높고 선실도 심하게 기울고 있었다. 3등선실엔 수라장, 시큼히도 토해버린 오물들이 여기 저기, 옆에 누운 어느 여학생은 볼품없게 늘어진 광경, 모두가 다 그만 그만한 맵씨에 말도 마다할 가관이었다.
  속이 내워 갑판에 올랐다. 바람은 차다. 선체는 뒤 돌아보는 일 업이 앞으로만 내 다고 깃폭은 무척이나 절그럭거린다. 밤바다는 말이없어 좋았다. 시야엔 끝없이 묵묵한 어둠과 위로는 무수한 별 그 찬란함은 더 할 수 없이 번져나고 있었는데 선실에서 간혹 새어나는 불빛에 이따끔 와 닿는 파도가 직각으로 깨어지곤 했다. 그저 모두는 어둠뿐으로 얼마나 좋은가 이 바다는… 나 다시 소줏병을 꺼내 들었다.
  다시 잠, ‘울릉도’가 보인다는 누군가의 비명에 눈을 뜨니 창밖엔 이른 아침, 갑판위를 올랐다. 충청촌(忠淸村)에서는 실감 하나 없던 그림들이 지금 그 거대한 모습으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섬이였다. 밤을 새워 11시간, 나는  지금 여기서 울릉섬의 태고적 교향악을 듣는 것이다.
  지도를 펼쳤다. 다시 시장끼를 느끼면서.
 
※ 편집자 주 : 에뜨랑제(′etranger)는 프랑스어로 외부인, 외국인을 뜻하는데 이 글에 어울리게 해석한다면 나그네, 이방인 정도가 어울릴 듯 싶다. 상당히 긴 글인데도 독특한 표현들로 인해 마치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 느낌이다. 여행의 즐거움과 고달픔, 여행지의 정취가 아주 잘 전달되는 독특하면서 멋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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