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청춘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강연이란 일반적으로 사회의 명사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대중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것을 말하는데, 요즘 이런 강의와 더불어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힐링’이라는 단어다.
‘힐링’은 영어 단어 ‘healing’을 그대로 읽은 말로, 본래 치료나 치유를 뜻한다. 최근에는 이 단어가 사람들의 힘든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은 본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진정으로 ‘힐링’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때에도 관심과 격려를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사실 누구나 복잡하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삶에 대한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위로해주고 치료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힐링’을 받기 위해 강연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이렇게 줄줄이 이어진 강연들은 정말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나 ‘힐링’이 필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만 같다. 현재 ‘힐링’이라는 용어는 이미 수많은 프로그램에서도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로 쓰이고 있고, TV 프로그램에도 속속들이 등장한다. 과연 우리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상처가 많은 것일까. 그리고 강의를 들으면 정말 ‘힐링’될 수 있는 것일까?
특히 요즘의 대학생들은 충분히 혼자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힐링’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이 받기만 하는 삶을 살아와서인지 자신의 삶에 정확한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너무 약한 주체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치유하고 위로해준다는 개념으로 시작된 ‘힐링’ 열풍이 이제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조차 약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인생에 있어 괴롭고 힘든 경험이 많을수록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힐링' 열풍이 불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킨 '프로포폴', 소위 '우유주사' 말이다. 사회에서 '힐링'이 대두되고 있을 때, 우리 사회의 다른 한 쪽에서는 이 '우유주사'에 중독된 사람이 있었다. 원래 '우유주사'는 수술을 하기 전에 마취용으로 사용되는 것이었으나, 긴장을 풀어주고 한순간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중독시키는 약물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우유주사’의 특징이 요즘 범람하고 있는 ‘힐링’ 열풍과도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물론 이러한 ‘힐링’ 열풍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 역시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힐링’을 내세운 강연들이 범람하고 있는 만큼 오히려 진정한 삶의 멘토가 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 또한 멘토를 찾아 그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기대지만 말고, 자신이 입었던 상처나 아픔은 자신이 치유하겠다는 자세로 변화해야 한다.
봄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난 뒤에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봄이 되기까지 그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나아갈 수 없다. 때문에 스스로의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우리 모두가 '힐링'의 온실에서 벗어나길 하는 바람이다.








박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