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활기차고 신선한 기운과 풋풋한 희망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봄을 맞이한 대학 교정일 것이다. 입시의 관문을 당당히 통과한 우리 새내기들을 보면 정말 반갑고 대견스럽다. 우리 충북대학교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된 신입생들에게 다시 한 번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벌써 3월이 훌쩍 지났으니 새내기들도 학교생활에 제법 적응을 하였을 것이다. 선배, 동기들과 술자리도 가졌을 것이고, 교수님으로부터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동아리 활동을 무얼 할까, 아르바이트는 어떻게 구할까 고민 중일 것이고, 각자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을 모색 중일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진입은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낯섦과 두려움이 동시에 수반된다. 과거의 관성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단 새내기들뿐 아니라 그들을 구성원으로 맞이한 기존의 구성원들도 다시금 공동체와 그 문화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교정 곳곳이 꽤나 소란스러웠다. 바로 신입생 한마당 축제를 준비하는 각과 새내기들의 노래와 율동 연습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학과 대항의 형식으로 치러지다보니 학과의 자존심을 걸고 치열한 각축이 벌어졌을 것이다. 학과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을 고양하고 새로운 구성원들의 공식적인 첫 단체 활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자. 공연 준비를 위해 연구실이 있는 건물 내부에서 저녁 늦게까지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는 행위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도서관에서는 휴대전화 벨소리도 실례라는 것은 당연한 상식인데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 공간이 있는 건물 내에서의 이러한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연습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가장 손쉽게 고를 수 있는 곳이 자기들이 속한 단과대 건물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공연 준비 과정에서 학생들 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어떤 새내기는 자신이 속한 학과 선배들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공연에 참가했다고 한다. 학생회나 참가를 권한 선배들의 입장에서는 신입생 전체가 참여하는 단체 문화행사인 점을 강조하며 참여를 정당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새내기는 자신이 대학에 공부를 하러왔지 공연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강변할 것이다. 이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어느 한 쪽을 두둔하기 힘들다.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가에 따라 지지 대상은 바뀔 수 있다. 일단은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학과 공동체의 일원인 것을 부인하지 않더라도 특정 공연문화 자체를 싫어하는 개인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공동체는 개인에게 있어서 정체성을 부여하고 협력과 조화를 배울 수 있는 울타리이기에 개인의 양보와 희생도 필요하다.
이기심과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된 현대사회에서 대학은 어쩌면 마지막 남은 공동체인지도 모른다. 같은 대학의 이름으로, 같은 학과나 학번의 이름으로, 같은 동아리의 이름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 이런 구성원들이 아직은 존재하는 공동체가 대학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이름으로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는 지성인들의 공동체는 아니다. 모임자리에서 술마시기를 강권하거나 후배들을 불러놓고 ‘군기’ 운운하는 몰지각한 선배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가치는 획일화되면 안 된다.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고 서로 충돌하고, 그래서 설득하고, 토론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곳, 그러한 공동체가 대학이다. 2013학년도 새내기들로 인해 우리 대학이 보다 세련되고 멋진 공동체로 비약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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