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제법 따뜻해진 아침, 학교로 산책을 나섰다. 햇살을 즐기며 대학 도서관 뒤에 놓인 길로 접어드는데 뭔가 이상하다. 원래 이 길은 겨울이어도 나뭇가지가 우거져 볕이 잘 들지 않는 그늘인데, 늘어진 그림자 하나 없이 쨍쨍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길을 메우던 나무들이 머리채를 전부 베인 몽당이들이 돼 있었다. 지난 겨울쯤인가 지나가면서 나무의 가지를 다듬어주는 모습은 보았지만 이렇게 굵은 가지마저 다 쳐냈을 줄은 몰랐다. 나무는 뻗은 가지하나 없는 모양새가 마치 단발령에 상투를 잘린 듯 처참했다.
비가 무척 오던 지난 여름에 나무의 가지가 부러져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했는데, 그 이유 때문에 베어버린 듯 하다.
이 길은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울창하게 진 플라타너스로 산책하기 참 좋았다. 더운 여름,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지나갈 때의 시원함. 그늘이 빼곡한 그곳만 여름이 아니라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그렇게 한 번 지나가면 어둔 그늘에 근심걱정 다 내려놓은 듯 상쾌했었다. 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찾기도 했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이 없이 뛰어가다가 그 넓은 잎사귀들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잠시 숨을 고른 경험이 있는 건 비단 나뿐 만은 아닐 것 이다.
아주 나무를 뽑아낸 것도 아니여서, 다시 봄이 되면 잔가지가 뻗고 잎이 피련만 무성했던 그 그늘이 아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봄에 하늘을 메워가는 맑은 연녹빛 새순들, 그 여름 더위를 식혀주고 비를 가려주는 품 넓은 그늘, 그리운 이에게 편지라도 쓰라며 내려주는 크고 바삭한 가을 낙엽. 이제 학교에 들어온 새내기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이제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 못내 아쉬움이다. 그중에서도 겨울 그 길 얘기를 못해 안달이 나겠지. 눈이 그득히 쌓인 아름다운 버짐나무길은 생명이 역동하는 다른 계절과는 또 다른 맛이 났다. 굳이 그 손에 무거운 카메라가 아니더라도 제각각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 추억들을 남겼다. 청주, 눈 쌓인 충북대 가로수길에서 라는 이름으로. 그래, 사람들은 그 길을 충북대 가로수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의 몽당연필들이 서있는 모양새는 도무지 가로수길이라고 불러줄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밤중에 한 번 더 지나가니 지옥으로 가는 장승이라도 여닫개 서있는 듯 오싹했다. 한동안은 가지가 부러져 누군가 다칠 일도 없을 거고, 해마다 수북했던 낙엽을 치우는 비용도 절약되어 학교의 살림에 보탬이 될 일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한적해진 거리가 못내 아쉽다.
이제 몇 년 간은 넉넉한 그늘의 추억을 쌓아갈 수도 없음이고, 이 길을 가로수길이라고 부를 사람이 없음에다. 이름과 함께 쌓여온 그 곳에서의 기억과 추억들도 떨어진 가지들과 함께 영영 사라졌다.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만들어졌던, 그 길의 역사가 숨쉬어왔던 이름이 사라졌으니 그 어떤 이름으로 그 길을 불러야할까. 이름이 불리지 않는 길은 그 정체성을 잃은 하나의 도로가 될 뿐이다. 그리고 그저 잊히겠지. 그리고 다시 화사하게 싹 피울 어느 봄날이나 되어서야, 그 길은 도로 제 이름을 찾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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