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새 학기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되어간다. 각 단과대학에서나 학과에서는 이런저런 일이 많다. 매일매일의 수업 외에도 신입생 환영회에 이어 신입생 한마당축제가 열렸고, 지난주에는 거의 모든 학과가 MT도 다녀왔다.
어떤 모임이건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서로 어울리는 관계의 문제다. 이 같은 관계에서 주체는 ‘나’, 즉 각각의 자기다. 그런데 ‘나’라는 주체는 ‘너’라는 타인과 어떤 점에서는 같지만, 어떤 점에서는 다른 존재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공유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토로할 수 있는 것이 있듯이, 고백하기 어려운 것들도 삶에는 분명 있다.
대학생(大學生)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히 말해, ‘크게 배운다(大學)’는 뜻이다. 이 배움은 자기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포함한다. 그것은 자기와 인간 일반에 대한 이해를 넘어 현실의 논리와 사회의 구조, 자연의 섭리와 우주의 질서를 익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넓이란 깊이에 의해 보완되는 것이라면, ‘크고 넓게 배운다’란 ‘깊게 배운다’는 뜻이 된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삶의 넓고 깊은 가능성을 익힌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간단치 않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한 방법은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너’나 ‘우리’가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하는’ 삶이다. 자기의 빛과 어둠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데서 바른 삶은 시작한다. 그렇다는 것은 매일 매순간의 일에서 남의 조언과 가르침을 참고로 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며, 이 결정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최선으로 내 삶을 만들어갈 때, 우리는 지시나 명령이 아니라 타이름과 설득을 통해, 훈계나 설교가 아니라 양해와 상호존중 속에서 더 나은 삶의 상태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여, ‘자기와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다.
자기에 대한 자신의 관계는, 그것이 쇄신되는 한, 밀폐된 것이 아니라 열려있다. 참된 개인은 주체가 자기와의 관계를 열어둘 때, 열어두면서 지속적으로 갱신시켜갈 때, 조금씩 완성된다. 그래서 더 진실하고 더 선하며 더 아름답게 되는 것이다. 삶은 주체가 자기에 대해 최상의 관계를 유지할 때, 이렇게 유지하려고 노력할 때, 좀 더 온전한 모습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이때 주체는 스스로 자유로울 것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가 아니라 자기자신에 대한 자기의 진실성이 우선될 것이다. 자기와의 관계를 거듭 갱신하지 못한다면, 그는 소학생(小學生)일 뿐이다. 대학은 더 높은 진선미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곳이지 편법이나 처세술을 가르치는 곳이 결코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조직하는 삶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은 자기 일에,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절실한 것이라면,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의 결정에 대해서도, 그것이 공적으로 해롭지 않는 한, 존중할 수 있다. 깊은 의미의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로운 결정과 선택 그리고 최선을 다한 생활 후에야 찾아드는 것이다. 공들여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만이 각자의 생애를 ‘살 만한’ 것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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