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무엇인가를 너무 원해서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던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이는 최근 실연을 겪은 내 친구 B의 이야기다. 일 년 전 첫눈에 반한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 친구인데, 얼마 전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오는 듯하다가 차갑게 돌아섰고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보면 별 것 아닌 일이라고 느껴질 테지만 그에게는 거친 폭풍이 지나가는 일이었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감성적이었던 그 스스로가 불러온 감정의 과장 탓도 있겠지만 그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은 그 어느 형벌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한 인간이 그렇게 처절하게 슬퍼하고 부서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오래 좋아하고 기다렸지만 그에게 잡히지 않는 그 친구를 보면서 그의 속은 그대로 바스러졌을 것이다. 더 이상 타들어갈 것도 없이.
그날 이후로 그는 세상 모든 것이 다 시시하고 하찮게 보였을 것이다. 어디서나 제일 말이 많고 제일 많이 웃던 녀석이었지만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남다르게 지식에 집착을 넘어서 악착을 떨며 매일 독서를 하던 그였지만 책도 손에서 완전히 놓았다. 꼭 이번에는 과 탑을 하겠다며 의욕적이고 패기 넘치게 학기를 시작했던 그였지만 얼마 동안은 강의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남자답고 거칠어서 가끔 오해를 샀던 그였지만 종종 몰래 눈물까지 훔쳤다. 말을 걸면 한 두 마디로 답하며 멍청하고 몽롱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를 보면서 머릿속에 한 마디만 맴돌았다. ‘이런 게 정말 있긴 있구나.’
하지만 그에게 주변 사람들이 조언했듯이 역시 시간이 약이었다. 이제는 그 전에 자주 하던 말도 안 되는 농담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웃는다. 그의 웃음이 단지 메이크업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힐링’이 언제부터인가 대세다. 모두들 저마다 힘들고, 지치고,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우리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그런다. 바쁘고 팍팍한 일상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내 친구처럼 실패한 연애 때문에. 하지만 밝음은 어두움이 없으면 밝음이 아니다. 행복은 슬픔과 불행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생은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당연히 상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견뎌내느냐다. 힐링은 다른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기 주변 세상을 조금만 다르게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면 상처는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조금씩 자연스레 아물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것에 맞서는 방법은 자기하기 나름이다(We can't control the tragedies that happen to us, but we can control the way we face up to them).”
세상이 끝날 것 같았던 일도 나중에 지나서 보면 정말 아무 일 아니었다라고 느낀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삶이라고 한다. 그것이 견뎌내지 못 할 고통은 없다는 것이다. 시인 T. S.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차라리 겨울이 더 따듯했다는 것이었다. 벚꽃이 피는 요즈음, 힐링이 절실히 필요한 어떤 이들에게는 맞는 말일수도 있겠다. 또 다른 시인 E. 바하만은 추락하는 모든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했다.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면 다시 날개를 펼 때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인한 4월이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화사하게 필 봄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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