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서울로 가는 여러 방법 중 비행기를 이용하는 법이 가장 빠르고 편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간다 해도 손해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여 그곳의 정취를 잠시 맛본 뒤, 대중교통편을 이용해 올라갈 수도 있다. 모험삼아 일부 구간을 도보로 여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 중 여관이나 민박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도 있는데, 그곳의 주인이 마침 친절할 수도, 아니면 불친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 방법보다 아마도 많이 느리고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먼 길을 돌아오면서 겪은 무수한 어려움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얻게 된 삶의 지혜는 두고두고 우리의 재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지혜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꾸려나가는데 있어 우리는 많은 용기와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 결국 느리고 불편한 여행의 경험들이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무수한 장벽들을 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최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이끄는 지나치게 빠르고 편안한 세계에 너무 많이 중독되어있다. 아울러서 빠르고 편한 것이 ‘혁신’이라고 선전하는 자극적인 상업광고는 느리고 불편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까지 느끼게 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첨단 기기를 통해 얻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뇌는 점차 창의성을 잃고 결석화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각종 자료 등을 뒤적이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불편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바로 남의 자료를 내 것으로 재창조하는 생산적이고도 창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사이버 문화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단 일분이라도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아니, 이미 손에 항상 쥐어져 있기 때문에 즉시 스크린을 터치해서 검색어를 입력하는 시간은 채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우리의 뇌는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다. 길들여진 뇌는 비창의적이고 비혁신적이다. 남이 이미 잘 차려 놓은 밥상에 내 수저만 들고 나타나는 즐거움이 어찌 작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으로써 우리가 잃게 되는 무수한 즐거움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고 본다. 내가 직접 찬거리를 준비하고 내가 선택한 레시피를 이용해 내 방식으로 차려놓은 독창적인 나의 밥상. 그것이 결국 내 몸에도 이로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밥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기농법으로 키우는 채소와 과일은 농부에게 느림과 불편함의 미학을 가르칠 것이다. 편하고도 빠른 제초제와 농약 등을 멀리하는 대신 끊임없이 잡초와 해충과의 전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키워낸 농작물은 인간에게 이로울 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 지구를 살리는 역할을 하지 않는가. 그만큼 느림과 불편함은 건강한 것이다. 혁신은 빠르고 편한 것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혁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때로 느림과 불편함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깨달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빠름과 편리함을 만들어 내기 위한 창의와 혁신은 결국 연구와 사색에서 나오는데, 이를 위해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느림과 불편함의 미학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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