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李容吉)
이튿날이다. 나의 마음 주변에 향기로운 광명(光明)을 펴시고 나의 마음 빈 그릇에 희망과 생명의 환희를 주는 서귀포는 청신(淸新)한 맛이 담뿍 풍긴다. 눈앞에 보이는 한라산은 구름 아가씨가 세수시켜 주느라고 분주하고 우리는 여관집 색시와 실랑이로 분주하고… 다음 먼저 찾은 곳이 정방폭포로 높이 23m 물줄기 3개가 직접 해중(海中)으로 떨어지는 동양유일의 폭포인데 진시왕의 사자 서복(徐福)이 서시과처(徐市過處)란 글을 남겨 논 곳이라 하며 이곳에서 1.5km 지점의 천지연 폭포도 높이 23m 수심 20m의 웅대한 모습과 관광호텔 등도 모두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정말이지 내가 시인이나 위대한 문장가가 아니기에 다행이었지 그 극에서 극을 표현하는 “조물주의 신공이 헌사(獻辭)도 헌사 할 사”란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수력발전소를 지나 밀감원에 도착했을 때는 흰 감화(柑化)가 몽긋몽긋 부풀어 올라 수줍은 처녀의 젓 가슴인 양 굴곡이 젖고 레바논의 백향목의 향기같이 코를 스치는 그 내음엔 정신이 몽롱하단다. 계속해서 달리면 서귀포 서방 12km 지점의 천제연에 도착한다. 란국의 “나이아가라”란 애칭을 띠고 있는 3연 3폭으로 된 이곳의 맑다 못해 짙푸른 물은 비단결 같은 광택을 발하는 이 탐라의 최고선(最高線)을 뒤로 모슬포로 향하는 중 한라산 청수(淸水)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속에 맑은 기암이 묵중히 좌정했고 흐르는 물은 소리도 없다. 이러한 암중에 솟은 맑은 물이 목을 스쳐 위(胃)로 들어갈 때 그 쩌릿한 촉감은 전기에 감전된 그 때의 그 기분이며 상쾌한 맛, 신선한 맛은 고란초를 바라보며 마시는 고란자 약수 맛은 ‘새발에 피’란 표현으로 끝내둔다. 모슬포 제일훈련소의 빈터와 공군기지를 지나 한림(寒林)의 길이 150m 높이 16m 폭이 2m 되는 종유석굴은 석순과 종유는 다 따가고 없지만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H야! 이제 제주도 일주는 끝이고 제주시만 남았다. 제주시를 말하기 전에 이제 부터는 탐라의 생활에 대해서 얘기하기로 한다. 우선 너무나 잘 아는 삼다삼무(三多三無)는 실제로 보고 느낀 그대로다. 석다(石多), 풍다(風多), 여다(女多)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었다. 풍랑 때문에 하루 늦게 출발했으니 풍다(風多)는 사실이고, 온 섬이 돌로 덮여있어 돌담 돌집은 물론 밭둑에도 방풍석이 쌓였으니 석다(石多)도 사실이다. 문제는 여다(女多)인데 알아본 결과에 의하면 남녀인구 비율은 같은데 활동이 여자가 많고 남자는 집에서 살림을 한다니 보기에 여다(女多)일 수밖에. 단, 중년층에는 한라산 공비토벌 때 남자가 많이 죽어 홀로 사시는 여자님네가 많다더구나. 이곳 여자들에게 네가 배울 것은 단하나 그네들의 강한 생활력이다. 좀 더 담대하고 억센 생활태도를 가져야 지금의 세계에서 살아나갈 것 아니겠니? 그 역사적 이유로는 예부터 탐라는 귀양 살던 양반이 많아서 그들을 공경하는 부인들의 습관이 지금까지 내려왔다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데 그네들의 애향심이란 섬사람 특유의 단결력과 더불어 칭찬할만한 사실들이다. 섬전체가 지식수준은 퍽 낮고 해녀들은 어릴 때부터 물에서 다듬은 인품이기 때문에 육지여성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하루의 벌이는 100~150원이며 음료수에 철분이 많기 때문에 간장염에 걸린 사람이 많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항이었다. 또 도적, 걸인, 대문이 없다하여 삼무(三無)라 했다는데 그것은 옛 이야기이고 내 눈에 비친 삼다(三多)외에 충혼탑이 많고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오다도(五多島)라 하고 싶지만 이건 나의 넋두리라 해두자. H야! 왕바리, 비바리 소리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다음은 이색적인 방언 몇 가지만 적어본다. 얍다지(항아리), 고리(찬장), 지실(감자), 곱대산이(마늘), 우리똘 서투는데 조국물옵서(우리딸 시집가는데 술 먹으러 옵소), 하영줍서(많이줍서), 무사경 햄수가(왜 그렇게 하는냐?), 겅하지맙서(그렇게마소), 고르지맙서(잔소리마소), 맨드롱할 때 학도로 캡소게(식기전에 빨리 들어보소), 나가시 바니시(들은풍월), 이찌바다히도 따비나도(일가에서 빈대한다) 등의 특유한 왜말 몽고말이 섞여있다. 이제 마지막 제주시의 소개다. 항구에서 나오면 삼거리의 해병혼(海兵魂)이 우뚝 솟았고 온 길을 따라 오르면 제주 최고 최대의 유적 관덕정(觀德亭)이 있고 제주대학을 끼고 돌면 만리의 장풍(長風)이 용머리를 스치며 창(蒼)을 향하여 뛰어 오르는 듯한 용두암이 진기롭고 제주도청을 향하는 길에 태고시대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삼신이 솟아 낫다는 삼성혈이 있고 제주시의 번화가 칠성동을 빠지면 길고 긴 부두에 이른다. 시간이 없어 한라산 등반을 못한 것이 서운하나 이것으로 수박 겉핥기식의 제주도 관광은 끝이다. 잠시 후면 장장 178리의 남해를 횡단하여 내가 탄 ‘제주호’는 부산항을 향할 것이다. 14~15시간이 걸린다는 긴 항로이다. 벌써부터 속이 메스꺼워지는 듯하지만 며칠만에 떠나는 선박엔 출영(出迎)나온 시민들의 아우성에 귀가 아프고 선실에선 자리다툼이 치열한 순간이다. H야! 드디어 정각 5시 배는 고동소리 구슬프게 출발이다. 이별을 설워하는 손수건의 난무, 부르고 응답하는 이름과 이름, 덩달아 뒤흔드는 손과 손,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손님을 위해 부두에나 배에 탄 사람들의 답례에 무언지 모르게 가슴에 뭉클 치미는 것이 있다. 이제 항구가 점점 멀어진다. 높은 파도에 흔들리는 갑판위에서 멀어지는 한라산을 바라보니 나흘 동안에 보고 느낀 탐라의 진경이 눈에 떠오른다. 벌써 결실을 재촉하는 보리밭이며 자유로히 풀을 뜯고 있는 조랑말과 유유한 목동, 산수유 밭의 노란 꽃, 이국의 멋을 풍기는 종려나무의 풍치, 그리고 정열을 담아 안은 빨간 동백꽃, 집집마다 자라는 파초와 남국의 풀은 못내 아쉬운 추억이 될 것이다. 야! 이제 나의 고달픔이 기쁨이 되고 오늘의 눈물이 내일의 웃음으로 바뀔 것을 믿어 본다. 무궁무진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산다는 것이 내 삶이라 할 것이면 나도 정말 산 보람이 있을 것이다. 이제 곧 한 톨 부끄럼 없고 티 없이 맑고 환한 너의 모습 앞에 기꺼이 대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하여 언제나 너의 따뜻한 숨결을 간직하며 이제 선실로 내려간다. 탐라여 안녕! 한라산이여 굿 나잇! <26일 제주호에서>
※ 편집자주 : 글을 옮기며 의미 전달이 어려울 것 같은 일부 부분은 수정했음을 밝혀둔다. 글을 읽으면서 ‘H’가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여자친구, 아니면 헤어진 애인, 아니면 짝사랑의 상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친구. ‘H’가 누군지는 풀수 없는 숙제로 남기고, 빠름과 편리함에 익숙한 습관을 잠시 접고 이 글의 쓰여진 당시의 방식으로 느림과 불편함의 여행을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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