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봉사활동을 마치고(임중희 ·영어교육과 1) 각박한 현시점에서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을 일부사람들은 약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자기 앞에 닥친 일도 다 처리 못하는 주제에 남에게 봉사하겠다고 코웃음 치기도 하지만, ‘자기보다 못한 점이 있고 어려운 때가 있으면 서로 도우며 생활해 나가는데 올바른 사회발전이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짧기는 했지만 KUSA 봉사반이라는 이름 아래 아직 개선되지 못한 생활 속에 옛 습관을 없애지 못하고 있는 곳으로 손길을 돌려, 그들과 함께 남들이 노는 시간에 땀 흘려 일해 봄으로써 그들이 심한 노동 후에 짓는 흐뭇한 웃음을 같이 지어 보았던 것이다. 좁은 농토를 확장시키고 콘크리트를 굳혀 다리를 놓으며 젊은이들의 힘을 과시한 후에 오는 쾌감, 일을 이루고 땀방울을 씻어 내리며 마주보는 빛나는 눈빛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한 것이며, 한편으로, 대화를 통해서 새마을 정신 고취, 식생활 개선, 가족계획, 아후강(뜨개바늘의 일종) 지도, 하기학교 등 다양하게 온 노력을 기울려 힘써 보았으며, 이들 모두를 통해 스스로 배우고 익혀 산지식을 얻는 기회로 삼아 일거양득 하게 되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권위 있는 사람을 사귀게 되는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사회의 이기주의적 배금주의사상에 더럽혀지지 않은 담박한 봉사정신으로서, 흙에서 나서 흙으로 가는 소박한 벽촌농민들에게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나눠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데서 더 한층 힘이 솟았고, 학장님, 지도교수님, 각계인사 특히 주민들의 협조와 관심 속에선 우리들 하나하나의 언행에 조심을 더욱 기하게 했고 따뜻한 정을 느끼게 했다. 첫 봉사활동이었지만 선배님들의 계획적이고 능률적인 지휘와 대원들과의 이해와 협조로 큰 성과를 보았다고 믿으며, 정부의 힘이 채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긴 방학의 일부를 할애하여 그들의 힘이 되어 준다면 ‘그것이 크게는 애국하는 길이 아닌가?’ 자위해보면서 여학생으로서는 난점이 있고 겨운 일이겠지만 참가해 보고 싶었던 일이었고, 동료, 후배에게 권하여 보고 싶은 일이며, 같이 보람을 느껴보고 싶다.
2. 아르바이트(박세민 ·농공학과 3) 방학이 시작되면 우선 학생들은 무진장한(?) 시간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하고 꽤나 걱정하고 있는 것도 같다. 여행을 해보겠다. 공부를 하겠다. 과외활동을 해보겠다는 등 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사실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한다. 여행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공부를 하자니 너무 덥고, 과외활동을 하자니 시간이 아깝고 등등 핑계 아닌 핑계로 사실 아무것도 못하고 방학을 보내는 수가 허다하다. 그 중에서도 그래도 가장 실속(?)이 있는 것이 ‘아르바이트’이리라. 돈을 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땀의 보상이 손에 쥐어졌을 때의 뿌듯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사회생활의 일선에도 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돈 버는 즐거움과 경험을 쌓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이것은 완전한 자기 합리화이리라. 우선 자신의 처지가 남과 같지 않다는 괴로움도 있다. 저녁시간 또는 낮 시간의 골든아워(?)를 빼앗긴다는 괴로움도 있고, 무엇엔가 하루하루 쫓기며 사는 듯한 느낌조차도 든다. 자기가 황금만능주의의 속물로 전락한 듯도 하고 말이다. 요즈음에 나온 대학생들의 앙케이트를 보면 아직도 과반수이상의 학생들이 부모님 주머니만 지켜본다는 비독립적(?)인 항목이 나온다. 이것을 보면서 ‘아! 얼마나 나는 독립심이 강할까?’하고 외쳐보지만 결코 즐거울 수만은 없다. 그만큼 고생이 뒤따르기 때문이리라. 또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도 실감을 한다. 개인 학습지도의 경우 주 6일 하루 2시간씩 해도 청주에서는 7천원에서 1만원 사이의 보수를 받는다. 청주라는 사회가 짜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간당 1백 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1백여 원을 벌려고 한 시간을 열심히 떠들고 나올 때쯤이면 좀 청승맞은(?) 기분조차 든다. 그러나 월급날이면 왜 그리 발걸음이 가벼운지. ‘아르바이트’ 정말 호강되고 안일한 단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지겹고 고달픈 단어도 아니다. 용돈을 벌면서 경제적인 독립심을 배우고 사회생활을 배우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면서 아마추어 일군으로서 그래도 즐거운 사업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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