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우린 두 가지 구분법에 익숙하다. 흑과 백, 땅과 바다, 빛과 어둠, 그리고 남자와 여자. 오늘은 그중에서도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가 있는, 지금 신문을 만드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신문사만 하더라도 현재 기자의 수가 모두 8명인데 남자 기자의 수는 1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조금 더 확대해서 편집기자를 포함한다고 해도 남자는 전체 11명 중에 2명으로 남자의 비율이 현저히 적다. 물론 이 상황을 꽃밭이라고 해서 부러워하는 남자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편집장도 필자를 포함해 3번 연속 여성 편집장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런 구조에서 신문사의 분위기는 무의식적으로 여성 중심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성비에 따른 분위기는 우리 학교 역시 적용된다.
선 단과대학마다 분위기 차이가 존재한다. 여성 비율이 높은 인문대학이나 생활대학의 경우 여성휴게소나 여성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돼 있고, 반면 남성 비율이 높은 공과대학이나 전자정보대학에는 축구동아리나 농구동아리 등 남성들을 위한 스포츠 동아리가 많이 결성돼 있다. 그리고 단과대학 학생회가 제공하는 여러 가지 정책도 은연 중에 그런 비율을 반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겠지만, 어느 순간 인문대학 남학생이나 공과대학과 전자정보대학의 여학생들은 의도하지 않은 ‘차별’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최근 그전까지는 쩨쩨하다고 여길까 봐 말 하지 않았던 남성들이 조금씩 차별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로 그것은 대학가에서 익숙한 ‘더치페이’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동안 남성은 데이트 비용을 거의 대부분 지불하라는 암묵적인 압박을 받아왔다. ‘여성이 더치페이를 얘기하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신여성이고, 남성이 더치페이를 얘기하면 구두쇠’라는 우스갯소리가 실제로 존재해온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남성은 여성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것이 불평등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불평등한 일을 해야 했다. 그건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와는 다르다. 실은 여성이 더 강했던 것이다.
대학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입장 차이가 있다. 때론 그것이 격렬한 논쟁이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군대나 임신, 출산을 놓고 누가 더 고생하고 있고 누가 더 힘든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가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먼저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립하기보다는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양성평등을 위한 시작이 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양성평등을 말한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양성평등이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서 양성평등을 이루는 간단한 실천 방법이 있다. 당장 더치페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계산하기 전에 돈을 나누는 게 불편하다면 적어도 밥을 먹고 난 다음에 커피라도 사자. 그게 아니면 내일은 자신이 사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주머니 사정이 비슷한 학생 신분일 때부터 기존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놓은 유리한 룰을 이용하지 않는 것, 그런 내면의 공정함이 양성평등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박소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