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도서관에도 여느 시험기간처럼 학생들로 북적인다. 시험기간 3주 전만 해도 중앙도서관 열람실은 한산하다. 학기 초에는 열람실이 텅 빌 정도이다. 하지만 시험기간만 되면 중앙도서관은 발 디딜 틈 없이 학생들로 가득 차있다. 그 뒤 시험기간이 끝나면 다시 한산해진다.
항상 시험이 끝나고 나면 SNS에 이런 글이 올라온다. ‘다음 시험부터는 제대로 된 시험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중간고사가 끝나도, 기말고사가 끝나도 이러한 부류의 글은 항상 올라오고 있다. 이렇듯 많은 학생들은 ‘시험공부답지 않은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커닝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시험을 보기 전, 교수님들은 항상 ‘커닝하면 그 자리에서 시험지를 찢고 F 학점을 주겠다’는 것을 강조하며 시험지를 나눠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커닝하는 학생들은 넘쳐나고 있다. 그들은 커닝을 통해 ‘양심’을 팔아가며 A+ 학점, A0 학점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시험을 볼 때 뒷자리에서 조금만 둘러봐도 커닝하는 학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커닝 방법도 다양하다. 책상에 써 놓는 학생, 투명한 OHP 필름을 이용하는 학생,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학생 등 커닝의 방법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물론 커닝의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학생들도 커닝을 하니까 뒤처지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더불어 본인은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봤지만, 컨닝한 학생들 때문에 성적이 떨어질 것 같다는 억울한 감정도 피어날 수 있다.
족보도 마찬가지다. 평소 친하지 않던 선배에게 족보를 요구하는 경우는 빈번하다. 시험기간만 다가오면 교류가 없던 후배에게 족보를 원하는 연락이 와 당황스러운 경험이 있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또 인맥을 통해 손쉽게 족보를 손에 넣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족보를 손에 얻게 되면 시험기간에도 족보만 믿고 교재를 보지 않고 족보만 보는 학생도 주위에 둘러보면 꽤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난 뒤 커닝과 족보로 받은 성적인 ‘A+’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정작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 순간에는 학점이 올라가고 취업의 문턱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에 차게 되겠지만, 양심을 팔아 커닝해 얻은 결과는 ‘진짜’ 결과물이 아닌 정작 속은 텅텅 빈 껍데기인 ‘가짜’ 결과물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은 중요한 삶의 요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중 “행복이란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요, 인간 존재의 총체적 목표이자 끝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이렇듯 본인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짓밟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우리 학교는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본인의 성적이 커닝으로 높아지면, 그만큼 다른 학생들의 성적은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커닝을 통해 성적을 높게 받아 본인의 행복은 챙길 수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남의 성적을 낮추면서 행복을 빼앗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남의 행복을 빼앗아가며 커닝을 해야 할까.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있을지 의문이다. 학점을 얻을 수 있어도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커닝을 하는 순간 깨지는 것이다. 이번 중간고사는 자기 자신에게 시험에 들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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