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후 해가 지면 학교 안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운동장에서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들, 학교 정문부터 후문까지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산책하는 사람들, 소운동장에서 빠른 속도로 뛰고 있는 사람들까지. 그중 반려동물인 개를 데리고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배변처리를 위한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개와 함께 산책을 즐긴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반려동물’은 사람과 함께 공존하며 서로 의지해가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개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사람과 함께할 정도로 역사가 깊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애완동물이 됐다. 때문에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강아지를 기르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애호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물애호가들은 본인이 기르는 동물은 자식처럼 여기며 정성을 다해 기르고 보살핀다. 때로는 형제나 자매 이상으로 애틋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모 프로그램에 출연한 동물애호가는 애완견 2마리 한 달 양육비로만 약 200만 원을 쓰며, 애완견이 먹는 사료는 초자연식으로 본인이 직접 만든다. 이 동물애호가 외에도 강아지 사육비로 1억 5,000만 원을 투자한 여성이 출연해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또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은 층간 ‘개 소음’ 때문에 종종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소음공해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개 성대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전기충격 목걸이를 걸어놓기도 한다. 개가 짖을 때마다 전기충격 목걸이가 고통을 줘 짖지 않게 만들고, 고양이는 발톱을 모두 잘라내 가구를 할퀴는 것을 방지하게 해 애호를 넘어선 학대가 되고 있다.
또한, 개고기 찬반은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다.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동물 학대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학대는 비단 개 도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소, 돼지, 닭, 오리 등에 대중화된 가축 도살 역시 도살이라는 것은 같다. 하지만 동물 학대라는 이유로 개 도살을 반대하고,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소고기와 돼지고기도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옳은 논리가 아닌가. 채소를 주식으로 먹는 채식주의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동물보호일 것이다. 자신이 평생 먹어온 동물의 수를 생각해보면, 동물성 식품을 끊음으로써 막을 수 있는 동물의 고통은 실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맷 볼’이라는 채식주의자는 ‘채식이 대다수의 동물보호 캠페인보다 훨씬 많은 동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며, 채식을 전파하는 것은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가장 많은 동물을 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더불어 요즘은 관상용 닭과 기니피그 등 애완용 돼지를 기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보편화된 개가 아니라 닭과 돼지에게 사랑을 주며 애완동물로 기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는 사람과 가장 친밀한 동물이고,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사랑받기 때문에 개고기를 반대하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모순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듯 ‘동물애호와 학대’, ‘육식과 채식’은 자신에 생각에 따라 종이 한 장 차이가 될 수 있다. 종이는 굉장히 얇다. 하지만 이 얇은 종이도 뒤집으면 전혀 다른 면이 나오는 것처럼 종이 한 장 차이는 실로 크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의 전환을 한다면 새로운 면이 보이지 않을까.








박소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