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 느지막이 4학년이 돼서야 필수 교양 과목인 ‘국어와 작문’ 강의를 듣게 되었다. “한자만 무진장 쓰다가 학기가 끝나겠구나” 하는 지루한 기대와 달리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엉뚱한 과제를 내주셨다. 단순하게도 교수님은 “여러분, 빈 종이에 나무를 그려보세요”라고 하셨다. ‘어린애들도 아니고 대학생들에게 왜 뜬금없이 나무를 그려보라고 하신 걸까?’ 하고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필자의 것과 다른 학우들의 나무 그림을 비교해 보고 나니 교수님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두루뭉술한 구름 같은 잎 뭉치와 꼬챙이처럼 생긴 나뭇가지. 하나같이 똑같이 생겼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나무 그림이었다. 몇몇은 나무에 사과 열매를 그리기도 했으나 그마저도 비슷했으며, 실제의 사과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왜 우리는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나무와 열매들을 똑같이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어릴 적 선생님 혹은 부모님, 아니면 형, 누나가 그려줬던 나무를 기억하고 마치 그것이 나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하고 필자는 추측해본다. 필자의 경우 유치원 교재에 있던 나무 그림을 따라 그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마도 그때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그것이 나무라고 믿으며 그려왔으며, 어김없이 국어와 작문 시간에도 그 나무를 그리고 있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어릴 적 누군가의 나무그림을 보고 비판 없이 모방을 해왔을 것이다. 그 나무를 실제 관찰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어딘가에 있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단순한 나무 그리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보고 그리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했을까? 우리는 관찰을 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관찰로 본 세상이 아닌 타인이 만든 틀 안에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를 왜곡하거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하여 창의적인 생각을 막을 수 있다. 어쩌면 오직 하나의 정답과 그 외의 것은 오답이 되는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에게 필연적인 결과였을 수도 있다. 배운 대로만 적으면 최소한 오답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관찰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하는 법조차 몰랐다.
수업이 끝날 즈음 교수님은 새로운 과제를 내주시며 직접 관찰해서 그린 나무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이 과제를 통해서 우리는 평소에 관심조차 없었던 나무들을 관찰하며 자신의 나무를 그리는 기회를 가졌다. 필자도 평소에 지나치던 나무들에 관심을 두고 관찰을 해보니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전에 그렸던 나무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다음 수업 날, 새롭게 그려진 나무는 처음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어설프지만 실제 나무와 흡사하기도 했고, 각각 그림은 나름의 모양과 특징을 갖고 있었으며 창의적이기도 했다. 우리는 자신들이 그린 나무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으며, 몇몇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며 왈가왈부하기까지 했다. 같은 사물을 보았음에도 자신만의 관찰과 해석을 통해서 창조된 나무였기 때문이다. 나무 그리기 과제를 통해서 직접 관찰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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