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들어와서 봉사활동이라고는 일분도 해보지 않았던 나에게 우리 학교 CBNU해외봉사단에 함께하게 된 것은 특별한 기회였다. 새로운 사람들과 모여 봉사활동을 해외로 간다는 것에 설레어 지원을 하게 됐는데, 안타깝게도 선발이 되지 않아 낙심하고 있을 즈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추가로 해외봉사단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해외봉사를 떠나기 전 2주간의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봉사단이 무슨 일을 하는지,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인지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들어간 수업 첫날, 20명이 모여 각 팀으로 나뉘었는데 얼떨결에 합격한 나는 덜컥 수학팀의 팀장까지 맡게 되어 부담감이 생겨났다. 게다가 어렸을 때 일본에 다녀왔던 것이 고작인 나에게 중국음식은 입에 맞을지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하게 됐다.
처음 발대식 때만 하더라도 중국으로 봉사활동을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실감이 났다. 연길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연변대학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연변대 학우들과 서로 진로에 대한 토론을 하였다. 처음에는 연변대 학생들이 우리말을 얼마나 잘 할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잘해서 놀라웠다. 토론을 하며 연변대 학생들도 우리나라의 대학생들과 진로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토론회 이후에도 하루를 함께 보내며 즐거운 추억을 보냈는데 당장 그 다음날 헤어져 아쉬움이 컸다.
봉사기간 동안 정암촌에 있을 때는 나는 매일 새벽에 기상을 하였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아침마다 소름이 돋았던 찬물샤워, 군 시절 이후 처음 해보는 손빨래, 오랜만에 사용해보는 재래식 화장실은 시골의 정겨움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었다. 정암촌 어르신들과 환영식, 송별식 등의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항상 우리를 손자들처럼 대해주신 것에 아직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걱정과 우리 민족을 걱정해주시는 마음은 우리나라의 어르신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멀리 떨어져 사시고 있지만 ‘한민족이라는 끈이 우리를 연결해 주고 있지 않나.’라는 느낌이 들었고 정말 많이 감동했다.
교육봉사 또한 의미 있는 경험이었고 이런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행운이었다. 교육봉사 내내 아이들을 가르치고 무엇인가를 설명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한편 봉사를 마친 후 중국 곳곳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적지를 탐방했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장수왕릉, 환도산성, 졸본성 등을 보며 만주벌판을 호령했던 고구려인들의 기개를 한 몸에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오호묘나 국내성 성터를 보며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사라져가거나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동안의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정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꼈다. 바쁘게 보내다 보니 기억에 남는 일들도 많았고, 추가합격으로 인한 뜻밖의 행운이기에 시간을 소중하게 보냈던 것 같다. 첫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 기수들도 우리들처럼 아니 우리들보다 더 좋은 추억을 남기고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