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만평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6.09.07 월 19:58
광장
광장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신문사
[사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제 894 호    발행일 : 2015.06.01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평생을 탐구했던 주제다. 우주선이 화성과 금성을 탐사하고 우주망원경의 성능이 향상될 때마다 이 우주는 더욱 더 넓어지고 있지만, 그 어떤 과학기술로도 ‘나’를 알 길은 전혀 없다. 나 자신을 알기 어렵다 보니 아예 옆으로 밀쳐놓고 그 대신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인 양 열심히 좇는다. 그리고 모두 다 재판관이 되어서 자기 나름의 잣대로 세상 사람들을 재판한다. 그러니 나 이외에는 전부 죄인이기에 우리의 양심은 계속 불편할 뿐이다. 우리가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판결은 그만두고, 나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독일의 저명한 심리치유사 버트 헬링거(Bert Hellinger)가 개발하고 전 세계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가족세우기(Family Constellation) 치유는 부모와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치유에 따르면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양심이 바로 유전자가 같은 집단의 무의식 속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가족양심(집단양심)이고, 가족양심은 가족마다 다르다. 각자 양심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과 쉽게 다툴 수 있고, 국가마다 국가양심이 있고 민족마다 민족양심이 있기에 국가끼리 또는 민족끼리 다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양심이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중요한 무리, 특히 가족에 대한 소속을 보장하는 본능에 가까운 지식을 말한다. 이처럼 양심은 우리를 가족이나 학교, 국가, 종교 등 내가 속한 특정한 무리에 묶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소속한 집단으로부터 제외되면 부모를, 국가를, 민족을 나아가 온 세상을 원망하고 미워하게 된다.
  가족세우기에서 ‘세우기’란 하늘의 별자리처럼 가족 구성원 모두를 각자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서 세운다는 의미다. 그러면 가족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나아가 이 세상과도 조화롭게 살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일 때는 모든 조화가 무너지고 삶이 힘들어진다.
한편 가족을 각자 제자리에 세우기 위해서는 가족 중 누구도 제외시켜서는 안 되고 모두 포함시켜야 하며(소속의 법칙), 그들을 각자 온 순서대로 세우며(서열의 법칙), 부모는 주고 자식은 받아야 한다(균형의 법칙). 이 세 가지 법칙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가족 안에는 관계의 어그러짐, 질병, 우울, 자살, 단명, 가족의 해체 등 온갖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사건들은 대물림된다. 예를 들어 가족 중 누군가 자살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가족양심 안에는 ‘자살’이라는 정보가 새겨지기 때문에 후손 중에는 무의식적으로 자살하려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그야말로 ‘눈 먼 사랑’이다. 우리가 할 일은 선조의 삶이 어떠했든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눈 뜬 사랑’을 하는 것이다.
  15년 전에 한국에 도입된 가족세우기 치유는 국내에도 작년부터 여성가족부의 인가를 받아 민간자격증 제도가 생겼다. 우리는 민족상잔, 연간 34만 명이 넘는 낙태, 자살률 세계1위 등 생명 경시라는 트라우마 속에서 살고 있다. 자식은 부모의 삶이 어떠했든 “예, 동의합니다!”, “당신들은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사셨습니다”라고 받아들일 때 가족양심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부모로부터 무한한 생명의 힘을 얻어서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깊은 심연에서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결국 나는 ‘우주’다.

목록보기
최근기사
D등급에서 9월 투표까지, 충북대·교통대 통...
학생들의 선의 노린 포교 수법, 개인정보 제...
<양심의 빈자리> 학내 공용공간, 잘 사용하...
고물가 시대, 학교 주변에서 찾은 가성비 밥...
원청교섭 나선 정부기관, 노란봉투법 현실은....
광장 More
<기자 보다> 빛이 나의 안에 있다면 그림자는 생기지 않...
<데스크칼럼> 절차 무시한 선거가 남긴 신뢰의 공백
<충슐랭가이드> 독서의 계절에 만나는 책과 카페 ‘인문아...
<기자보다> 여름이라는 유예기간,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데스크칼럼> 서툴고 투박한 내 언어의 가치
<츙슐랭가이드> 익숙한 골목에서 만난 뜻밖의 여정, ‘운...
<기자 하다> 어둠을 뚫고 한라산에서 맞이한 새해, 한계...
<데스크칼럼> 학점이 배움을 삼키다
<충슐랭가이드> 쉼표가 있는 삶, ‘초정치유마을’
<기고문> 개신단(開新壇)과 과유불급(過猶不及)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만평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직무대리 유재수 | 주간 : 이장원 | 부주간 : 신꽃비)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