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USB에는 ‘신문사’라는 폴더가 존재한다. 이 속에는 매번 신문을 준비할 때마다 제출했던 초고들이 가득하고, 신문이 발간되는 날짜를 이름으로 가진 폴더들이 12개나 쌓여있다. 필자는 언제부턴가 월요일만 되면 자연스럽게 회의를 준비하고, 수요일만 되면 마감에 긴장하는 한 명의 ‘기자’가 돼 있었다. 2015년 3월 23일 폴더에 있는 13번이나 수정된 초고와 2015년 11월 16일 폴더에는 단 한 번의 수정을 거친 초고만 봐도 감회가 남다르다.
처음 취재를 나갔던 날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선배 기자가 알려준 취재 방법을 수첩에 그대로 적어 읽고 또 읽었다. 혹시 틀릴까 봐 겁이 났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충북대신문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선배 기자에게 처음으로 제출했던 초고는 13번의 수정을 거친 뒤에야 편집국장에게 전달됐다.
이렇게 쉴 틈 없이 1년을 달리며 필자는 더욱 단단해졌다. 어색한 대학생활과 신문사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난생 처음 무언가에 대해 ‘실력이 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학교 학생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누구보다 고민하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 신문을 준비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충북대신문 제900호 특집 설문조사에서 충북대신문을 읽지 않는 학생의 비율이 약 75.6%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필자뿐만 아니라 충북대신문에 소속돼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이고, 돼야만 한다.
사실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신문을 만들어나가며 늘 들었던 생각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신문을 안 읽을까?’였다.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조금은 다른 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게 됐다. 충북대신문에 대한 열독율이 낮은 이유는 학생뿐만 아니라 신문을 만드는 우리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북대신문을 읽지 않는 학생 약 605명에게 ‘충북대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는?’이라고 물었을 때,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답변은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였다. 흥미란 심리적으로 ‘어떤 대상에 마음이 끌린다는 감정을 수반하는 관심’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진짜 학생들을 위한 신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더 다가가야 하고, 신문을 읽고 싶을 만큼의 마음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신문에 대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점 또한 강조하고 싶다.
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기자로서 학생을 위한 신문을 만들며 더 발전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학생들은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면 어떨까. 충북대신문은 늘 학생들의 곁을 지키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니 말이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