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가족과 식사를 했다. 간만에 보는 부모님의 얼굴보다 밥상 앞에 놓인 수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요즘 금수저다 흙수저다 말이 많아서인지 밥상에만 앉으면 내가 물고 태어난 수저는 금일지 은일지 그도 아니라면 흙일지 궁금해하며 쓸모없는 생각에 자주 잠기곤 한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다 해서 자녀의 경제.사회 활동이 반드시 안정적일 것이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경의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에 비해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자녀가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더 쉬울 것이라는 통념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수저 계급제’가 등장하면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일명 금수저들은 자신들의 노력 없이 얻어진 것에 대한 공허한 성취감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청춘들은 시작도 해 보기 전에 흙수저라는 낙인이 찍히는 기분을 맛보게 됐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사실에 안 그래도 힘든 청춘들은 더 힘들어졌다.
청춘으로 일컬어지는 우리 세대에는 참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우리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됐고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어려움들은 마치 청춘만이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인 것처럼 풀어낸 한 교수에 의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로 예쁘게 포장당했다. 급기야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니 하는 말까지 생겨나면서 우리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계급제에 의해 줄 세워지고 있다.
사회를 풍자하는 문구나 패러디는 언제나 만들어지곤 했다. 따라서 풍자의 일종인 수저 계급제를 코미디 정도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유난스럽다는 시선을 던지는 이도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하필이면 밥 먹는 도구를 가지고 계급을 나눠버린 수저 계급제 만큼은 웃어넘기기 거북하다. 수저 계급제를 마냥 살기 팍팍해진 현실에 자조하는 청년세대가 만들어낸 블랙코미디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수저 계급제로 줄 세워진 우리의 계급이 나의 노력이 아닌 부모가 나에게 준 경제.사회적 유산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출발선은 같아야 공평하다. 금수저가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진 상이 아니듯, 흙수저 또한 그들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흙수저라는 말이 싫다. 아무도 나에게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흙수저라는 말을 우리 부모님이 알게 될까 봐 싫다. 자식에게 늘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우리 부모님들이, 나는 못 배웠으니 너는 열심히 배워서 꼭 성공하라는 우리 부모님들이 흙수저라는 말을 알게 되면 본인이 자식에게 흙수저를 준 건 아닌지 생각할까 봐 싫다’
‘나는 부모님께 좋은 흙을 받았다. 내가 깊게 뿌리 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흙을 받았다...(중략). 큰 나무가 돼야겠다. 부모님이 기대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돼야겠다. 아주 좋은 흙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어느 학생의 흙수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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