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배따라기>의 처음은 ‘사람’과 자연에 대한 비유를 통해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암시적으로 나타냈다. 한 단락 넘어간 후, 이 소설은 삼월 삼질에 ‘나’의 이야기로 그 뒤를 잇는다.
‘나’는 봄의 자연을 느끼며 자연 속에 ‘사람’의 한계와 그를 극복해낼 수 있는 세계인 유토피아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나’는 기자묘 근처에서 들리는 ‘영유 배따라기’를 듣고 구슬프면서도 잘 부른다고 생각하며 그 노래의 주인을 찾기 시작한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배따라기 노랫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부르는 이를 찾게 되고, 구슬픈 노래에 담긴 그의 사연을 듣게 된다.
그에겐 하나뿐인 아우와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었다. 그 부부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는 자기 아내에 대한 의심이 많았고, 그로 인해 폭력도 종종 일어났었다. 그는 평소 그의 아우에게 열등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우에게 잘해주는 그의 아내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쥐를 잡으려다 옷가지가 헝클어진 그의 아우와 아내를 본 그는 이때까지의 모든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며 아우를 폭행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그 길로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 아우는 그 사건 이후 이곳저곳을 떠돌며 다녔고, 그는 아우를 찾으러 여러 곳을 다녔지만 아우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필자가 생각한 주제를 한 줄로 말한다면 ‘인간 운명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작자인 김동인은 ‘인간은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일까?’, ‘그 운명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의문을 배따라기를 부른 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제기했다.
이는 ‘내’가 생각한 내용 중 진의 시황을 큰사람이라고 칭하는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필자는 처음 이 내용을 읽을 때는 왜 그 악명 높은 사람을 큰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일까 하며 이상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인간의 운명에 부딪히려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큰사람이라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보다 더 운명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소설 작품은 이청준의<서편제>를 들 수 있다. 서편제에선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소리꾼 남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소설 <배따라기>와 <서편제>는 결국 운명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한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과거에는 지금보다 운명에 더 순응적인 삶을 살아갔던 것 같다.
지금은 운명에 순응하는 이야기보다 운명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이야기가 더 많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모습. 흔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의 내용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뭐라 단정해서 말하기가 어렵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운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순응적으로 살아야 할까. 맞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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