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년 후, 그러니까 2069년이 되면 지금은 상상조차 못 했던 변화들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런 변화들은 굳이 5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10여 년간 있었던 기술발전과 그로 인한 우리 삶의 변화만 보아도 이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술발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2007년, 우리 집에 처음 컴퓨터가 생겼다. 이후 나는 참고서나 여러 책을 찾아가며 하던 숙제를 컴퓨터를 이용해 간편하게 했고, 게임과 동영상을 즐기며 여가를 보냈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나는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은 마치 휴대하기 편한 손 안의 컴퓨터였다. 아니 그보다 더 혁명적이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검색이 가능하고, 사진은 물론 동영상 촬영까지 가능하다. 그뿐인가. 게임, 영화, 쇼핑, SNS, 내비게이션 등 참으로 신기한 기능이 많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나는 소위 ‘집돌이’가 되어 점차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주 심각한 중독까지는 아니었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줄어 점점 살이 쪘다. 언제나 스마트폰을 옆에 두어야만 마음이 놓이고, 깊은 밤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느낄 때마다 기분이 착잡해졌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편하게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부작용으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제국주의로 인한 전쟁과 인간소외 현상이라는 부작용도 함께 가져왔다. 그뿐인가 환경오염으로 인한 자연파괴는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로 이어져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이러한 부작용도 기술발전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이 또 다른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 때 영어 교과서에서 본 글이 있다. 자연과학은 사용되는 방향에 따라 매우 다르게 쓰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철학과 동반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자연과학은 인문학과 함께 발전할 때만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애플의 성공 비결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접목에 있었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 우리 사회도 조금은 인문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부디 이런 관심이 보여주기식 정책에 머물지 말고, 우리 사회의 인문학이 융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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