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때로 학원, 누군가는 대학원. 인간이 인간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점진적으로 사회를 겪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내가 뭘 따라가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이 길이 대학 입학을 위한 효율적인 철로인지, 아니면 꿈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돕고 계획하도록 교육해주는 곳인지 나는 오래 혼동했다. 그리고 혼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내 꿈을 내 희망전공으로 바꿔 적는 요령을 배웠다. 아마 그때, 다시 어려질 수 있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때, 옆 짝꿍이 오래된 나무 책상에 경계선을 그어둔 이유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너머로 튀어나간 내 지우개를 몇 개나 빼앗겼는지, 내 쪽으로 굴러온 연필을 몇 자루나 내 것이라고 우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24살이 된 나는 옆 자리 사람과 나 사이의 경계선을 긋는다. 문득 외롭다. 이제는 지우개나 연필이 아닌 나를 뺏기고 뺏어오는 것 같아서. 동심을 모두 잃어버려놓고 그것을 다시 바라고 있다. 앞으로의 진로를 걱정하면서, 내게 남은 동심의 농도를 훑어본다. 정말로 그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을까.
혹시라도 동심이 쓸 데가 있을까봐 아예 바닥나버렸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그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겠는가. 이제 내게 필요한 것들은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의 내가 이 사람과 저 사람의 기분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예의와 처세, 내 한 몸 먹여 살릴 수 있는 돈 벌이, 아주 희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과 관련된 직장 등등이다. 그것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낸 걱정들이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처럼 굉음을 내며 나를 덮쳐온다. 동심은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기 전에 미리 나에게서 떠나버렸다. 붙잡을 생각도 못했다. 내 옆을 떠나간 존재의 자취는 주변의 온도가 천천히 낮아질 때가 아니라, 완전히 차가워졌을 때에야 자신의 빈자리를 실감 나게 하듯이. 동심은 어느 순간 나와 아주 먼 곳으로 떠나 그곳에서 나를 멀뚱히 보고만 있다. ‘너, 가끔 내 생각날 걸?’ 으스대는 표정으로.
의택이는 올해 17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남자 아이다. 그날따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서 미래, 대학, 진로 따위의 이야기를 해줬다. 최대한 꼰대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의택이가 장난처럼 하는 말들도 모두 받아 적고 물어도 봤다.
아이, 쌤, 제가 그런 건 또 좀 하죠. 그래? 그럼 게임 개발자도 흥미가 있겠네? 아, 근데 그렇지도 않아요. 어쨌든 게임은 좋아하는 거니까 이걸 중심으로 생각해볼까? 아, 맞다, 쌤. ㅋㅋ 그거 보셨어요? 뭐, 어떤 거? 하이라이트 웃긴 거 있거든요, 그런 거나 만들어 볼까? 오, 그래. 크리에이터 분야도 전망이 괜찮은 편이지. 아, 근데 사실 그냥 장난이에요. 뭘 할지 모르겠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을 장난처럼 말할 수 있는 의택이한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열등감과도 비슷했다. 이제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까.
귀 뒤를 시큰하게 만드는 내 걱정은 이글이글 불타는 불안을 뿜어내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했다. 조금 뚱한 표정으로 내민 입술, 의택이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인스턴트커피가 가방 안에서 터지지 않게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궁색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다음 정류장, 몇 명의 사람이 더 탔고 나는 내 궁색한 모습을 숨기려고 했다. 내 모습은 창피했다. 그리고 정말, 아주 정말 뜬금없게, 일단 등을 펴고 앉자고 날 다독였다. 괜찮으니까,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자고, 자세가 태도를 바꾼다고, 그런 말도 속으로 계속 하면서. 그러나 나는 마음에 드는 노래도 고르지 못하고 재생 목록을 끊임없이 뒤적였다. 이 노래도, 저 노래도 내가 잘 부르지 못한다. 사실 나는 평생 베짱이처럼 노래나 부르고 싶었다. 사실 나는 요리를 배워보고 싶었고, 춤도 잘 추고 싶었다. 아주 어린 나는 그런 걸 바랐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런 것들이 내 세계에서 은근히 떠다니고 현실로도 넘어와 문득 떠올랐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던 적은 별로 없었다.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어린 마음과 꿈과 내 모습을 계속 쓰다 보니 그게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쓰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항상 나와 닮지 않았다. 그건 싫었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잘 쓰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글을 계속 쓰고 있었다. 습관처럼.
처음엔 내가 진짜로 잃어버린 것이 뭔지도 몰랐다. 그게 동심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지금도 내가 잃어버린 것의 요체가 동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동심은 아마 내가 잃어버린 것들 모두에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 그런데, 하는 여운이 속에 남는다. 이제 어린이처럼 생각할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쉽고, 내가 아직 어린이 같다는 반성이 동시에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와 씻으면서, 아무 결과도 기대하지 않고 내 동심이 얼마나 순수하게 남아 있는지를 검토해본다.
모르는 사람에게 궁색한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은 치기 어린 마음과 미래 설계를 위해 어려운 논문이나 철학사 책을 읽으려 시도하는 나. 이 둘 사이의 간극은, 아직도 동심이란 게 남아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끄는 장력이 만들어낸 것 같다. ‘너 사실은 놀고 싶고,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지고 싶고, 노래나 부르고 싶고, 그냥 그렇게 살고 싶은 거잖아.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애처럼.’ 동심은 저 멀리에서 말하고 나는 듣는다. 문제는 내가 동심의 입을 다물게 하지 못한다는 것, 그럴 시도도 어영부영 대충 해서 넘겨버린다는 것, 결국 동심이 내가 바라는 세계와 내게 필요한 세계를 딱 잘라서 내게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동심은 악의 없이 순수한데 내가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 이제는 내가 어린애처럼 살 수 없음을 안다. 한편, 동심이 보여주는 세계가 나를 고민하게 하고 못살게 굴어서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아주 많은 것을 하고 싶었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은 해봤고, 그 사이에서 걱정하고, 뭐가 옳은지 고민하고, 그 틈에서 갈피를 놓쳐버리거나 흔들리기도 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원래 너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었다. 많은 문인들이 다시 되찾기를 소망하고, 인생의 고난에서 문득 떠올리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안식처였다. 내가 너를 두고 이렇게 고민이 많은 건 그저, 네가 가진 순수함이 내게 더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내가 특출나게 고민이 많아서, 뭐가 내 진심인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것은 이제 네가 나에게서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로 떠나버렸다는 뜻이며, 다행이도 내가 그 사실을 알아서 가끔씩 창문 너머로만 너를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린 이제 그렇게만 만날 수 있다. 앞으로 나는 더 오랜 시간을 살아가겠지만 너는 그대로 남아 나의 색안경에 비쳐지는 대로 등장할 것이다. 그것이 내 동심이 점차 늙어갈 내게 남겨주는 흔적이자, 상이자, 복수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하고 싶었던 일들과 함께, 그것들을 결국 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어느 정도 맛은 봤다고 안심하는 마음과 함께, 현실에 찌들어 매일을 고민하는 내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아주 먼 미래에 색안경마저 벗어던지고 어린 마음으로 죽기를 또한 바라고 있으니까.
* 콰드르페니아(Quadrophenia)는 글에 대한 애정으로 대학생들이 모인 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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