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의 차별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시민사회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만큼,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 없이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의 지원을 해야 하는지가 까다로운 쟁점이 된다. 이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는 것만큼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힘겹고 어려운 비대면 상황일수록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사회적 약자는 적극적인 주체가 아니라 지원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약자로 남는다. 당장이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을 만들어내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약자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은 필요하다. 기사 작성을 위해 인터뷰를 응해준 장애 학생들은 원격수업을 수강하면서 학습권이 보장된 것 같으냐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비장애 학생들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문제들을 각자 갖고 있었다. 같은 코로나19 시국에 살고 있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너무 달랐다.
그러므로 그들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삭막한 아파트에서 이웃으로 추정되는 이에게 어색한 인사 한마디 건네는 것처럼 부담은 느끼지 말되, 관심을 두자. 기자는 작년 <충북대신문>에서 장애 학생 도우미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읽고 대필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취재를 하면서도 장애 학생 도우미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작년에 했으니까 이번에 부족하지는 않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대필 활동을 해줄 도우미가 부족하게 되면 누군가는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된다. 대필 지원을 받지 못한 데다가 비대면 강의를 들어야 했으니 상황은 더욱더 좋지 않았으리라.
기자는 이번 기사를 통해 우연히, 그리고 운 좋게 그들의 상황을 발견했기에 차별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차별을 처음 마주할 때의 기분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차별은 더는 절대 악이 아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었다. ‘나쁜 사람들’은 없었지만, 문제는 차별도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 실체와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기자가 투명한 차별을 보는 방법 하나를 소개해 보겠다. 그 세상 안으로 들어가라. 필요하다면 용기도 내보아라. 그것이 시민사회가 가진 가장 큰 힘이다. 그 힘을 최대한 활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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