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사는가? 삶은 그만큼 견뎌낼 가치가 있는 것일까? 지겨운 질문이다. 누군가는 꿈이 있고, 누군가는 꿈이 없다. 누군가는 목적이 있지만, 누군가는 목적이 없어 당황한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 어설픈 것 같고, 기대했던 것들은 언제나 기대를 벗어나는 것 같고, 나는 잘 사는 것 같지가 않다.
영화 <소울>은 삶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영화가 말하는 주제는 너무도 심플하다.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애환 자체다. 정규직을 향한 사회의 압박,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강박이 드러나는 주인공이다. 사람의 성향이나 취향, 가치관과는 무관하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는 것만이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꿈이 되어버린 것처럼 치부되는 우리 사회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꿈은 ‘정규직’이 됐다. 조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학교의 정규직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조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은 오직 음악이며, 재즈만이 조를 행복하게 만든다. 어느 날 존경하던 재즈 아티스트 도로테아에게 급히 피아노 주자가 필요해지자, 조는 그 도로테아의 연습에 참여할 기회를 얻고 같이 호흡을 맞추게 된다. 그 후 그가 그토록 원했던 공연을 따냈고, 뮤지션으로서 인생의 꿈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신나게 거리를 걷던 조는 발밑을 주의하지 못해 죽었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찾아온 비극, 죽음으로 향하는 계단에 서지만 조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고, ‘태어나기 전 세계’로 떨어진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태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영혼 ‘22’의 멘토가 되어 인간세계로 오게 되지만 실수로 조의 몸에는 22가 들어가게 된다. 링컨, 테레사 등 많은 위인을 만나며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던 22는 그저 피자 한 조각과 숨 쉬고 걸었던 작은 순간들로 하여금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조도 마찬가지다. 몸을 되찾은 조는 마침내 도로테아와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치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을 느낀다. 도로테아는 말했다. 어떤 물고기가 바다를 찾고 있었다고. 그러자 나이 많은 물고기가 ‘여기가 바다야’라고 말했고, 그 물고기는 ‘여기는 물인데요?’라고 답했다고. 수수께끼 같은 말이지만, 우리는 고개를 끄덕한다.
우리는 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완벽한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구에게나 기대하던 순간은 존재한다. 대학에 합격한 순간, 고백에 성공한 순간, 원하는 무언가를 마침내 이루는 순간. 기쁨이 차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행복에 취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게 전부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어쩐지 허무해지는 것. 이 순간 역시 다른 순간처럼 그저 스쳐 가는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 조는 공연을 끝낸 날,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 뭔가를 달성하고 골에 이른 듯한 감격을 느끼리라 생각했지만, 그날은 그저 특별히 기분 좋은 것에 불과한 그냥 ‘밤’이었다. 평범한 밤. 꿈을 이루는 것은 아름답지만, 그 밤도 물론 소중하다. 다른 밤처럼. 다른 밤만큼. 그리고 바로 ‘그냥 사는 것’이야 말로 삶의 소중함 그 자체이다. 그 어떤 위대한 위인들의 인생보다도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었다. 한없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한 영화다.








신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