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움의 크기가 커지는 것을 느껴가는 요즘이다. 잔잔한 일상에서의 사소함부터 행복과 불안을 넘나들며 감정의 파도를 느끼던 순간까지 나에겐 이미 지나가 버린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사람마다 그리워하는 대상이나 순간이 다르겠지만, 나에게 그리움은 지나온 시간에 보내는 애틋함이었다. 자신만의 애틋함을 외로이 추억하는 것. 그렇게 그리움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꺼내어 보고는 지나온 적 없는 시간 속, 경험해 보지 못한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영화는 주브로브카 공화국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소설은 오래되고 낡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묵던 작가가 호텔 주인인 노신사 제로에게 전해들은 내용으로, 여기엔 호텔이 붐비고 화려하던 시절의 지배인인 무슈 구스타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액자식 구성으로 여러 시대가 뒤섞여 있지만 그 모든 시대는 한 인물에 대한 그리움으로 연결된다. 로비 보이 시절 자신의 스승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음을 회상하는 제로부터 소설을 쓴 작가와 훗날 소설을 읽어 본 소녀 독자는 이야기 속 무슈 구스타프를 그리워한다.
무슈 구스타프는 꼼꼼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엉성하고 충동적이며, 고급스러운 표현과 억양을 구사하면서도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땐 천박한 단어를 내뱉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런 무슈 구스타프를 가리켜 제로는 ‘암울하던 시대의 희망’이라 말한다. 영화는 1930년대 동유럽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지만, 당시 급변하던 유럽 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때 ‘동유럽의 파리’를 꿈꾸며 화려하게 부상하던 부다페스트의 몰락은 대부호들로 붐비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쇠퇴로 표현되고, 전쟁 이후 유럽에 드리운 파시즘과 민족주의가 불러온 불확실성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고스란히 나타난다. 기존 질서와 사고가 적용되지 않는 상황은 주인공마저도 비켜갈 수 없었다. 불합리함을 당당하게 주장하던 용기, 그만의 방식으로 지켜오던 환상도 결국 시대의 어둠 앞에 다소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다 보면 한 편의 근사한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 눌러 담은 감독의 메시지에서 내가 느꼈던 그리움에 대해 알게 됐다. 무슈 구스타프는 품위 있는 어른 같으면서도 때로는 미숙한 소년같은 모습으로 어설프고 불완전한 듯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에게 가진 전부를 내어줄 정도로 사랑을 주기도 했고, 누군가 자신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여준다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는 시대가 변해가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렇게 무슈 구스타프는 사라져가는 낭만의 끝자락에서 끝내 노인이 되지는 못한 채 영원한 소년의 모습으로 남았다.
영화를 여러 번 보고난 뒤에야 내가 느끼던 ‘주인 없는 그리움’은 흑과 백으로만 표현되는 절제된 세상에서 과감하게 색채를 입히고자 했던 이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감독은 동화 같은 아름다운 색감을 더해 흑백의 시대 속에서 희망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의미 없는 경계에 사로잡혀 마음과 달리 절제하고 침묵했던 순간들을 반성해본다.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꾸밈없이 쏟아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지나온 적 없는 낭만의 시대 속에서 그의 모습을 추억하고자 또 다시 영화를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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