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여름은 유독 뜨거운 ‘온도’였다. 뜨거웠던 여름도 이젠 가시고 하루아침에 쌀쌀해진 가을이 찾아온 요즘이다. 이번 ‘기자 읽다’ 코너에서는 독서의 계절인 가을에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이기주 작가의 에세이, <언어의 온도>를 가져왔다.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중학교 시절 언어를 온도에 비유한 책 제목이 신선해 눈길이 갔던 기억이 난다. 평소 소설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언어의 온도>는 언젠가 한 번 들어본 유명한 책이라 읽어보겠노라 맘먹었었다. 그랬는데도 바쁘고 귀찮다는 갖가지 이유로 책 읽기를 계속 미뤘었다.
그러다 엄마와 미용실을 함께 간 어느 주말에, 미용실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엄마의 머리 손질을 기다리는 동안 심심풀이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의 에피소드에 따라 웃음이 나기도,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며 이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미용실에서 책을 다 읽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용으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 내가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책이 돼 있었다.
<언어의 온도>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주제로 작가가 일상에서 느낀 생각들을 풀어낸 책이다. 작가는 역이나 카페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사람들을 관찰하던 도중 작가가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부분은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읽어보는 것 같다. 다양한 에피소드 중에서도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던 세모’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야기는 세모와 동그라미가 언덕에서 구르는 시합으로 시작된다. 동그라미는 완만한 모양 덕분에 세모보다 항상 빨리 언덕을 내려갔다. 세모는 항상 빠른 동그라미가 부러워 동그라미를 이기기 위해 언덕에서 끊임없이 구르고 또 굴렀다. 덕분에 세모의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어졌고, 동그라미와 비슷한 빠르기로 언덕길을 내려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세모였을 때는 언덕을 구르다 언제든지 멈춰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 다신 못 보게 되었다고 후회하며 동그라미가 된 세모의 후회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세모는 자신만의 모양을 억지로 바꾸며 원하던 동그라미의 모양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끝은 후회하는, 더 이상 세모가 될 수 없는 동그라미만이 남았다.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모습을 동경해 자신을 억지로 바꾸는 세모. 그 세모는 동그라미가 되기 위해 언덕을 계속해서 굴렀다. 누구나 한 번쯤은 되고 싶은 모습과 자기 모습의 괴리로 인해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봤기에 우리는 모난 곳을 깎는 세모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세모는 동그라미가 될 수 있지만 동그라미는 다시 세모가 될 수 없는 법이다. 이제 나는 동그라미란 틀에 억지로 나를 넣으려 하지 않고 ‘세모’인 내 모습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가는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자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던 세모의 이야기를 공감의 언어로 따뜻하게 전달해 현실의 세모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세모만의 온도가 담긴 이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동시에 ‘세모’로서의 나를 인정하는 변화의 기회를 줬다. 세모의 후회로 끝난 이야기는 자기 모습을 잃은 씁쓸함이 전달돼 마치 쌀쌀한 가을의 온도를 연상케 한다. 우리는 평소 세모인 우리에게 어떤 온도로 말했는지, 우리가 오늘 사용했던 언어의 온도는 몇 도였는지 <언어의 온도>를 읽으며 확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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