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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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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유연희
‘남자다움’으로 포장된 잘못된 성 역할
제 958 호    발행일 :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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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 A군은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인원수가 부족해 축구에 참여하게 됐다. 운동을 즐기지 않던 A군의 실수로 득점의 기회를 놓쳤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에게 “남자가 왜 이렇게 운동 신경이 없냐”라고 말하자, A군은 친구에게 화를 냈다. 그러자 주위에선 “남자가 그런 일로 화를 내냐”며 비아냥거렸다. 남자라는 이유로 운동을 잘할 필요도, 화를 참고 넘어갈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남자를 남성다움에 가두는 ‘맨박스’

  사회적 성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늘어나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왜 우리가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데”, “왜 남자는 다 능력이 있는 존재여야 하는데?”라며 사회적 통념으로 부여된 남성다움을 거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우리 학교 심리학과 박상희 교수는 “전통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각각의 역할에 맞는 생각과 행동의 특성을 보이도록 사회화가 됐다. 현재는 성 분업이 현저히 축소돼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이러한 서로 다른 역할에 대한 요구가 가진 부당성이 두드러지게 느껴져서 비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이 남성다울 것’을 강요하며 남성에게 씌워지는 억압을 남자(MAN)를 남성다움이라는 상자(BOX)에 가둔다는 의미로 ‘맨박스’라고 부른다.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맨박스는 여성과는 다른, 육체적으로 강하고 정신적으로 똑똑한 존재가 돼야 한다는 규범이다. 이런 남성성의 규범은 결국 지위가 높고 돈을 잘 버는 등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으로 귀결된다”라며 “이런 ‘능력 있는 남성’에 대한 규범은 보통의 남성들이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보다 외적 규범에 순응하도록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칼럼리스트 필 바커는 자신의 저작 <남자다움의 사회학>에서 “남자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자다움을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강요당한다. 남자답지 못하게 굴면 또래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고립된다. 그와 달리 남자답게 행동하면 칭찬과 우러름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 ‘약점을 보이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울지 마라. 계집애처럼 굴거나 감상적인 사람이 되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고 모든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이 돼라’라며 남자라면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 번은 ‘남자다움을 연기’하려는 단순한 이유로, 상처를 주고 폭력적인 행동 등 자신도 알고 있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라고 꼬집는다.
  ‘남자다움’이라는 규범에 세뇌당해 ‘맨박스’에 갇힌 사람들은 상하 관계가 명확하다. 그들은 공격적으로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사람이 윗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치열한 경쟁 속으로 뛰어든다. 연세대 젠더 연구소 김영미 소장은 “누가 더 남자다운가를 두고 일어나는 이른바 ‘남성성 경쟁 문화(masculinity contest culture)’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사회심리학 연구를 통해 남성성 경쟁문화가 강한 환경일수록 독성리더십(toxic leadership) 문제가 두드러지며, 여성에 대한 편견도 심해진다는 점 밝혀진 바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맨박스의 폐해에 대해 “한국의 많은 기업이 맨박스에 갇혀있다. 24시간 365일 회사 일을 최우선시하는 근로자를 이상적 근로자로 생각하는 기업문화는 돌봄 부담이 없는 사람 즉 남성을 표준으로 상정하는 문화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장시간 근로와 야근, 회식이 남성성 경쟁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소수의 남성을 제외한 남성 대부분과 여성을 패배자로 만드는 문화이다”라고 지적했다.

‘맨박스’로부터 시작된 잘못된 성관념

  ‘맨박스’는 남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맨박스에 갇혀 남자가 남자다울 것에 세뇌된 남자들은 ‘여성’을 사회적 약자이자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여성성과 남성성을 우월관계로 구분하게 된다. 신경아 교수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성도 남성의 경쟁자가 되는 순간 남성들은 그들의 분노를 사회적 약자로 인지하는 여성에게 투사하게 된다. 결국, 차이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더 소통하고 협력해 가야 할 여성과 남성이 갈등 관계로 들어가게 되는 부정적인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라고 전했다.
  대학가의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나 “N번방 사건” 등은 맨박스에 갇힌 남자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사회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남성의 성(사냥꾼)보다 여성의 성(먹이)을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는 대상으로 취급한다. 이런 이유로 성범죄에서 가해자는 늘 남성이고 피해자는 늘 여성이다.
  하지만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성범죄 일반화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만들기도 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면 특별한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면 ‘설마’라는 의심부터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남성은 여성보다 육체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성폭력을 당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과 남성은 항상 성적 주체로 기능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여성과의 성적 접촉(설령 그것이 의사에 반한 것일지라도)을 환영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는 맨박스의 영향이기도 하다. 맨박스의 관점에서 남성은 성적으로 주체이기 때문에 항상 성적으로 왕성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취하길 원한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어도 맨박스의 관점에서는 여자를 취했으므로 남자의 이득이 된다.
  이런 시각은 여성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의 형량이 남성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에 비해 가볍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박준경(소비자학과·21) 학생은 “남성도 똑같이 성범죄를 당할 수 있고 똑같이 수치심과 범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으므로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감정적인 부분을 배제 시키는 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성폭력은 물리적 힘의 차이에서 발생하기보다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하며, 남성도 억압된 분위기나 상황에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성’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방법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인터넷을 통해 교사 집단 또는 그보다 더 큰 단체로 추정되는 단체가 은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인 사상(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자 최소 4년 이상을 암약하고 있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라는 글이 올라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해당 청원 글은 이들 교사 단체가 ‘학생이 페미니즘 사상을 따르지 않으면 따돌림 당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책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 오세라비 작가는 “만약 청원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런 사상을 미성숙한 아동.청소년에게 주입하는 것이야말로 가스라이팅이다. 성교육.성평등 교육의 중심에 페미니즘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성관념을 심어준다”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페미니즘 주입 비밀교사집단과 관련 사이트에 대한 수사는 명확한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 여론을 조장하기 위한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주장과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는 여성의 남성 혐오, 남성의 여성 혐오가 만연해있다. 하지만 남녀가 서로 혐오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이에 전문가에게 상대 ‘성’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들어봤다.

# 신경아 교수
  생물학적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중요하기보다 이런 차이에 대해 사회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규범화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성차별적 사회에서는 이런 차이를 수직적인 위계로 해석해서 성별 차별과 불평등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성별 차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젠더’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 박상희 교수
  양성 간의 근본적인 차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확실히 전통 사회보다는 성 역할의 분담 필요성이 줄어들었으므로 규범이 유연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성의 근본적인 차이 못지않게 개인 간의 다양성도 크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각 개인이 특정 성별을 가진 사람보다는 ‘개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그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사회가 포용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 오세라비 작가
  사회 속에서 젠더 갈등상태가 계속되면 ‘남녀분리주의’가 점점 심각해집니다. 남녀가 서로 연애, 사랑에 빠지기도 힘든 세상이죠. 슬픈 일입니다. 작은 농담조차도 성 역할에 대한 문제로 생각하기 바쁘니 말이죠. 우리 사회는 남녀 상호책임, 상호보완적, 상호의존적으로 발전돼 왔어요. 함께 남녀가 연대하는 정신의 회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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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긴 머리에 치마를 입고 화장과 치장을 하며, 목소리 톤이 높고 높낮이 변화가 많으며, 감정 표현을 자주 한다. 남자는 머리가 짧고 화장을 하지 않으며, 낮은 톤의 목소리로 높낮이 변화가 없고, 여성보다 조금 더 과묵해야 하며 감정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세뇌된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다. 이런 ‘남자답게’, ‘여자답게’ 대신 ‘나답게’, ‘너답게’라는 말이 넘쳐날 때 남자와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모두가 존중받는 진정한 남녀 평등사회가 올 것이다.


이종우 기자
dlwhddn722@chungbuk.ac.kr
유연희 기자
yyh212@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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