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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워킹푸어, 탈출구 없는 빈곤
제 873 호    발행일 : 2014.03.03 


 

대한민국은 푸어(poor) 공화국

  대학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인권과 실태에 대한 언론보도를 종종 접하곤 한다. 저임금을 받고 장시간 노동하는 비정규직, 임시직 등 고용이 안정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옛 속담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조상들은 가난을 하늘이 내린 형벌처럼 받아들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게으르고 무능해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문제는 다르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20대들은 비싼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 때문에 버거운 빚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고, 어렵게 직장을 잡아도 부모님께 용돈은커녕 빚더미를 안은 ‘일하는 빈곤층’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처럼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워킹푸어(working poor)’라 한다.
  빚이 생기는 원리는 간단하다. 개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보다 지출액이 많으면 빚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에 비해 대가를 덜 받고 있거나 아니면 노동의 가치보다 더 많이 쓰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과소비를 탓하지만 소득증가에 비해 소비는 결코 늘지 않고 있다. <201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가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는데도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워킹푸어 족은 열심히 일을 해도 저축을 하기 빠듯할 정도로 형편이 나아지지 않다. 이들은 갑작스런 병이나 실직 등으로 한 순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고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으로 자신을 ‘워킹푸어족’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현 상황에 대해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전 연구위원은 “양질의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고 공공부문 역시 임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을 확대함에 따라 저소득 근로빈곤층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킹푸어,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 에듀푸어, 베이비 푸어, 실버 푸어….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푸어’들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커지는 빈부 격차와 중산층의 붕괴로 직면한 이른바 ‘신빈곤의 시대’를 의미하는 말들이다.


  2013년 6월경 구인구직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799명을 대상으로 푸어족이 되는 원인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봉이 적어서’(61.1%)가 1위에 꼽혔다. 저임금 구조의 노동시장이 푸어족 양산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밖에도 ‘현재 지출이 유지될 것 같아서’(26.1%), ‘상황을 개선할 방법이 없어서’(23.6%), ‘고용이 불안정해서’(19.4%), ‘재테크 등을 잘 못해서’(16.5%),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16.3%)라는 이유가 나왔다.
  박진 한국조세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은 “자신의 역량과 미래소득을 예측해서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푸어 시리즈가 양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08년까지는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률 6%를 유지해 왔으나 현재는 3.4% 정도로 하락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6%의 성장을 기대하며 투자하고 소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푸어 신드롬은 단순히 미래투자와 소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각각 그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열악한 주거지에 살면서도 소득에 비해 무리하게 고급차를 사는 ‘카 푸어’나 해외여행, 쇼핑 등에 과도한 소비를 해 궁핍해진 ‘쇼핑 푸어’들은 이 논리에 표면적으로 딱 들어맞는 '맞춤형 푸어족'이다.
  반면 임시.비정규직 등의 저소득층 직장인이 겪는 ‘워킹푸어’는 높은 노동강도와 저임금에 시달려 건강이 악화되어 ‘헬스 푸어’로 이어지는 ‘생계형 푸어’다. ‘헬스 푸어’를 겪은 이들은 건강악화로 다시 노동을 하지 못해 더욱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니 건강을 돌볼 여력이 없어 악순환을 반복한다.
  우리나라의 빈곤율은 현재 15%에 이른다고 한다. 100명 중 15명이 빈곤층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떨어지던 빈곤율이 199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하우스 푸어 현상이나 만성적인 고용불안, 높은 청년 실업률 등으로 인해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높은 경제성장으로 가난을 몰아낸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성장률이 정부의 의지대로 높아지지도 않을 전망이다.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쉬플러(David K. Shipler)는 2009년 자신의 저서 <워킹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를 펴내며 이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오랜 시간 직접 취재를 하면서 빈곤의 악순환에서 허덕이는 미국의 냉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워킹푸어란 서로 상승하는 일련의 장애들이 모여 생겨나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며 “한 가지 문제에 대한 개선책이 나오더라도 그 밖의 많은 문제에 대한 개선책이 동시에 나오지 않는 한 개선책은 ‘지원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해결책’이 되진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사회의 비정규노동자 모두의 이름이 되어버린 ‘워킹푸어’. 호출근로(on call worker),  특수근로 등 비정규직의 분류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마저 줄이고, 여러 가지 변형된 근무형태를 고안해 인건비를 최소화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워킹푸어’는 단순한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문제이다. 가난은 대물림된다는 말이 있다. ‘워킹푸어’의 문제를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만 본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워킹푸어’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부가 대물림되는 것처럼 빈곤도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흔히 일류대학이라고 하는 특정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사회적 부와 지위를 거의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내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내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스펙과 질 좋은 사교육으로 남보다 뛰어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런 우리사회의 교육문화는 돈에 의한 학력의 대물림과 학력에 의한 부와 지위의 대 물림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빈곤한 사람은 자식들도 빈곤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됐다. 이런 사회구조에서 ‘워킹푸어’는 빈곤의 늪에서 구해줘야 하는 대상이 됐다.
‘워킹푸어’ 계층이 육체노동자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대학교수나 의사처럼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도 엄청난 빚을 지고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모습은 이젠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워킹푸어’가 되는 것이 지금 우리사회의 현실이라면 우리 모두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프레시안이 보도한 <한국의 워킹푸어>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워킹푸어’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워킹푸어’가 증가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사회복지제도가 잘 되어있는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노동 시장의 문제를 사회복지제도가 절충보완해주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은 ‘워킹푸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워킹푸어’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자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또한 사회복지는 물론이고 교육, 고용, 여성 등의 측면에서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의 불행 양상은 매우 다양한 것 같다. 복지학을 전공하고 있고 누구보다도 사회정책, 노동복지에 관심이 많은 필자 역시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나름 고학력자의 길로 가고 있는데 온전히 편한 마음으로 공부하지 못하고 있다. 돈 없이는 공부도, 취업도 어렵다는 사회의 현실에 찌들어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워킹푸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신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불안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늘어난 빈곤층, 굳어진 양극화

  대학을 졸업한 워킹푸어 역시 매년 증가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졸 워킹푸어’는 2000년 16만 6천 명에서 지난해 67만 5천 명으로 매년 10% 가량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버푸어’도 심각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1인 가구의 빈곤율은 76.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인 30.7%보다 훨씬 높다.
  이렇게 사회는 점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정부는 이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저임금의 노동구조로 인한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심화가 불러온 고질적인 사회.경제적 참사를 고스란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사회구조속에서 개인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데 정부는 이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없어 고스란히 개인의 책임으로 되어 어느 곳에 불만을 토할 수도 없는 실정인 것이다. 죽어라 일을 하고도 잘못된 처우를 받고 근로자 종류를 세분화하여 통계수치를 조정해서 실업률 수치만 낮추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고 고용-복지가 연계된 ‘일을 통한 빈곤탈출’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사회보험 발전이 뒤쳐져 있고 임금수준이 낮기 때문에 한 번 빚을 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 뿐 아니라 ‘워킹푸어’로 전락하기 쉽다. 따라서 단순한 일자리 창출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만 워킹푸어 족들을 빈곤층에서 탈출시켜 줄 수 있다.


근로빈곤층의 빈곤탈출을 위한 의식전환

  빈곤의 이유를 따져보는 것보다 더 절박한 일은 빈곤을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안이한 의식을 바꾸는 일이다. <노동의 배신>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는 빈곤이란 “어렵지만 어찌어찌해서 넘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낮은 수준의 처벌을 끊임없이 받는” 상태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중산층은 빈곤의 존재 앞에서 ‘죄책감’을 넘어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대다수 중산층이 누리는 안락한 삶이란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는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빈곤은 대물림되어 빈곤한 아동, 청소년, 노인들이 재생산된다. 푸어족에서 벗어나려면 인식을 바꿔야 한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버리고 저성장 시대에 맞는 투자·소비 행태를 만들어야 한다. 죽지 말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한국의 ‘워킹푸어’들의 외침을 한 번쯤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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