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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 vs 神 : 잊혀진 우리 신화 속 영웅 (1)
제 877 호    발행일 : 2014.04.28 

인어 아가씨? 인어 아저씨?

  자, 지금부터 눈을 감고 바다 속을 누비고 다니는 ‘인어’를 상상해 보자. 바다처럼 푸른 눈, 예쁜 얼굴, 눈부시도록 뽀얀 피부 그리고 요즘 말하는 소위 ‘섹시한’ 상반신에 물고기의 하반신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 보이는가? 왕자와의 아름다운 사랑이 펼쳐지고 있는가?
  만약 당신이 아래의 그림을 상상했다면 당신은 헐리우드가 주는 상품화 된 ‘상상력’을 ‘기억’해내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인어’라는 전설 속 인물에 대해 이렇듯 정형화돼 있는 것일까? 전설, 신화 등은 결국 상상력의 산물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인어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면 어떨까?’, ‘그(남자라는 가정하에)는 바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기 이 기발한 역발상의 상상력을 우리보다 훨씬 앞서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네 선조들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것을 상상하고 기록해 놓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나 등장할 법한 기묘하고 신비하고 재미있는 신들과 영웅들이 등장하는 동양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인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정말 우리 동양에도 ‘인어’가 살고 있었을까? 물론, 동양에도 인어가 살고 있었다. 단, 아름다운 ‘아가씨’가 아닌 ‘아저씨’라는 면이 다를 뿐(일부 고전에선 여인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동양에도 엄연히 인어가 살고 있었다.

  그 인어의 이름은 ‘저인(人)’이라 하며 직업은 비단장수이다. 속칭 ‘생계형’ 인어인 셈이다. 바다 속에서 열심히 짠 비단을 육지로 팔러 다니는데, 비단을 다 팔면 머물렀던 여관집에 숙박비를 지불한 뒤 바다로 돌아간다. 그런데 숙박비 내는 방식이 재미있다. 저인은 숙박비를 낼 시간이 되면 주인집에 그릇 하나를 달라고 해서 그릇 안에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러면 그 눈물이 진주가 돼 떨어지고 그것을 숙박비로 대신 지불하는 것이다.
  서양의 인어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이지는 않지만, 어딘가 정감이 가지 않는가? 너무나도 인간적인 그래서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인어아저씨, ‘저인’은 우리의 상상력이 서양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게 생활 속에서 비롯된 소박한 그래서 인간미 넘치는 재치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상상력 차이는 그 문화와 어우러져 재밌는 차이점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속에는 그리스 로마신화처럼 영웅의 모험담도, 괴물 이야기도 그리고 사랑이야기도 있다. 같은 듯 다른 동양과 서양의 신화 속 주인공들을 지금부터 만나보자.


신화 속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

  신화 속 주인공들을 알아보기 전에 우리는 동양과 서양의 신화에 깔려있는 세계관의 차이를 먼저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나라 고구려벽화(오회분 5호묘)에 나타난 그림을 보면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신’이 등장한다. 바로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이다. 신농씨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사람들에게 농업을 가르쳐주고 좋은 약초와 나쁜 약초를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준 신이다.
  서양을 보자. 서양에도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괴물’이 등장한다. 미노타우로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 잡아먹는 크레타 섬의 괴물이다.
  두 신화의 공통점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등장이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쪽(동양)은 ‘신’으로서, 다른 한쪽(서양)은 ‘괴물’로서 등장한다. 왜 그럴까? 여기서 바로 동양과 서양의 신화 속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동양에는 전통적으로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이 있다. 천은 하늘이면서 자연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늘과 인간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신토불이(身土不二)’도 마찬가지이다. 자연과 하나가 된 사람을 우리는 ‘신선’이라 부른다. 학을 타고 다니고 구름 사이를 노닌다. 즉, 천인합일에 도달한 사람은 성인이고 신선이 된다.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것, 이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이고 가장 바람직한 상태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동물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물을 자연의 가장 역동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서 동물을 신성시하고 숭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이 합체가 된 반인반수를 괴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함께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서양 문화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그리스에서는 일찍이 인간 중심의 철학이 발전했다. 인간 중심 철학에서 자연은 인간이 지배할 대상이고 동물은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이 섞여 있는 반인반수의 모습은 사악한 괴물이라 생각했다. 스핑크스, 세이렌, 메두사 등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가 모두 괴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렇게 동서양의 다른 세계관 속에서 탄생한 각 신화 속 영웅들은 어떠할까?
  자, 그럼 이제 동서양 신화 속 영웅들을 만나러 가보자.


영웅전: 헤라클레스 vs 예

  그리스 로마신화 최고의 영웅은 바로 ‘헤라클레스’다. 주신 ‘제우스’와 인간인 ‘알크메네’ 사이에 태어난 아주 인간적인 그리고 수많은 모험담과 로맨틱한 사랑을 보여주며 서양의 예술, 문학계에서도 끊임없이 인용되는 영웅의 아이콘이다.
  그의 모험담은 ‘헤라클레스의 12난사(難事)’로 잘 알려져 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헤라클레스 : 레전드 비긴즈>도 바로 헤라클레스의 모험담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다.
  헤라클레스의 영웅담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관계로 생략하고, 이제 우리 동양의 영웅 ‘예’를 만나보자.
예는 동이계 종족의 영웅으로 활을 잘 쏘았다. 그는 신이라고도 하고(중국고서에는 천제의 신하 ‘신’이라 나온다) 인간이라고도 한다(<산해경>에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하여튼, 예에게도 헤라클레스의 12난사 만큼이나 많은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를 영웅으로 만든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해를 활로 쏴 떨어뜨린 일이다.
  옛날에는 해가 한 개가 아니었다. 당시 해는 모두 열 개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동방의 천제 ‘제준’과 태양의 여신 ‘희화’ 사이에 태어난 아들들이었다. 이들은 황금빛이 나는 세 발 달린 까마귀(삼족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동방의 양곡이라는 곳에서 열흘을 주기로 순서대로 하루에 하나씩 번갈아 가며 떠오르게 되어 있었다.
  어찌됐든, 어느 날 이 열 개의 해가 한꺼번에 떠오른다. 이에 세상은 너무 뜨거워 농작물은 다 타죽고,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했다. 기우제를 올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때 우리의 영웅 예가 나타나 해를 하나씩 활로 쏴 떨어뜨린다. 그는 해 하나만을 남겨놓고 아홉 개의 해를 떨뜨려 세상을 구한다. 그의 영웅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다음은 중원의 괴물 ‘알유’를 물리친 일이다. 알유는 소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했다고도 하고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했다고도 전해지는 괴물이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내어 산속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린애 우는 소리를 듣고 다가오면 갑자기 나타나서 잡아먹었다고 한다. 예는 이 알유를 멋진 활 솜씨로 처치한다.
  그 다음은 남방의 괴물 ‘착치(鑿齒)’와의 싸움이다. 착치는 끌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2미터나 나온 괴물로 그것을 무기 삼아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다. 착치는 예가 명궁이라는 사실을 알고 방패를 들고 예와 맞서 싸웠다. 때문에 예는 상당히 어렵게 착치를 죽였다고 한다.
  네 번째 모험은 북방의 괴물 ‘구영’과의 싸움이다. 구영은 머리가 아홉 개나 달린 놈으로 물과 불을 뿜어대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예는 흉수라는 강가에서 이것을 잡아 죽였다. 헤라클레스와 히드라의 싸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다섯 번째 상대는 동방의 ‘대풍(大風)’이라는 사납고 거대한 새였다. 이 새는 사람을 채가기도 하고, 날개짓으로 큰 바람을 일으켜 집을 부수기도 했다. 예는 청구라는 지역의 호숫가에서 대풍을 발견하고는 활을 쏴 맞췄으나 대풍은 활을 맞고도 도망을 갔다. 그래서 예는 활에 줄을 묶어 쏴 맞추고, 줄을 당겨 떨어뜨린 후 칼로 쳐 죽였다.
  예의 여섯 번째 모험은 다시 남방에서 이뤄졌다. 남방의 괴물 ‘파사(巴蛇)’를 없애는 일이었다. 파사는 코끼리까지 삼켜버린다는 커다란 구렁이로 동정호 호숫가에 나타나 백성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예는 파사를 활로 마구 쏴 정신을 뺀 다음 칼로 베어 죽였는데 이 괴물의 몸집이 어찌나 컸던지 그 죽은 뼈가 큰 언덕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 동정호 근처에는 파릉(巴陵)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바로 이 파사의 주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예가 마지막으로 제거한 괴물은 거대한 멧돼지 ‘봉희’였다. 예가 마지막 괴물을 제거함으로써 세상에는 평화가 오게 된다.
  어느 영웅에게나 그렇듯 모험담에 어찌 로맨틱한 사랑이 빠질 수 있겠는가. 예는 봉희와의 싸움 이후 돌아오는 길에 하백(황하의 신)의 아내 복비(宓妃)와 사랑에 빠진다. 복비는 천하절색의 미인으로 초나라 굴원과 위나라 조식이 시로써 그 아름다움을 칭송했을 정도다. 그러나 복비와의 로맨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예의 최후는 무척이나 안타깝고 슬프다. 예의 아내 항아는 매우 아름다운 여신으로 예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으나 항상 하늘로 돌아가길 원했다. 예는 항아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서왕모(서쪽을 다스리는 영생불사를 관장하는 여신)로 부터 불사약을 얻어 왔다. 그러나 항아가 혼자 불사약을 모두 먹어버리고는 홀로 하늘로 향했다. 하지만 남편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하늘로는 가지 못하고 달로 숨어들어 옥토끼가 됐다. 달나라 토끼는 이렇게 생겨났다.
  아내를 잃은 예는 제자육성에 힘을 쏟으며 특히 ‘봉몽(逢蒙)’이란 제자를 총애했다. 그러나 스승을 시기 질투한 봉몽은 사냥길에서 돌아오는 예를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때려 죽인다.
  백성들은 이 비극적인 영웅을 기리기 위해 그에게 제사를 지내며 귀신의 우두머리로 추앙한다. 세상의 모든 괴물을 죽인 예가 귀신의 우두머리가 되어 두려울 것이 없었으나 딱 한 가지 두려워한 것이 있으니 바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복숭아나무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878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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